이혼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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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혼 고백장」중에서, 1934년 『삼천리

작품 해설

이혼고백서는 나혜석김우영이 헤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나혜석 본인이 직접 밝힌 글이다.
나혜석은 1934년 <삼천리> 8월호와 9월호에 「이혼 고백장」을 발표하며 김우영과 결혼하지까지내의 내력, 10년에 걸친 부부생활, 시어머니·시누이와의 갈등,
구미 여행 중 최린과의 관계, 역경에 처한 가운(家運), 어쩔 수 없이 이혼 요구에 응해야 했던 사정, 그리고 이혼 후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쓰며 자신의 이혼 과정을 두려움 없이 공개했다.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은 단순히 이혼 사건의 진실만 밝힌 글이 아니라 이 글에서 자신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네 가지 질문으로 분류해서 답하고 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둘째, 부부간에 어떻게 하면 화합하게 살 수 있을까. 
셋째, 구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나혜석은 근대 여성 지식인으로서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연마해야 하는지, 조선의 여성들이 개척해야 할 삶은 무엇인지,
결혼 생활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나혜석의 고민은 깊었다.「이혼 고백장」 전반에 드러나듯이 나혜석은 이혼을 막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었다.
이 글의 부제 ‘청구(靑邱) 씨에게’가 말해 주듯, 나혜석은 전남편 김우영에게 사건의 전말과 본인의 진심을 여전히 전하고 싶어 했다.

원문

離婚[이혼] 後[후]

H에게서 편지가 왓나이다.

「K에게서 電話[전화]가 왓는대 離婚[이혼] 手續[수속]을 畢[필]하엿다고 四方[사방]으로 通知[통지]하는 貌樣[모양]입데다. 참 우수운 사람이오 언 니는 그런 사람과 離婚[이혼] 잘햇소.  이러서々[서] 탁々[탁] 털고 나오 시오」

그러나 네 아해를 爲[위]하야 내 몸 하나를 犧牲(희생)하자 나는 작말고 잇슬난다. 以來[이래] 두 달 동안 잇섯나이다.

空氣[공기]는 一變[일변]하엿나이다. 서울서 氏[씨]가 從々[종종] 나려오 나 나 잇는 집에 들니지 아니하고 누이 집에 들녀 어머니와 아해들을 請 [청]해다가 보고 시어머니는 눈을 흘기고 시누이는 축이고 시숙들은 우물 물 불느고 시어머니는 全權[전권]이 되고 만다. 洞里[동리] 사람들은「왜 아니 가누 언제 가누」구경 삼아 말한다. 아해들은 할머니가 과자 사탕을 사주어 가며 내 방에서 데려다 잔다. 이와 갓치 戰爭[전쟁] 後[후] 勝利者 [승리자]나 敗北者[패배자] 間[간]과 갓치 나는 마치 捕擄(포로)와 갓치 되 엿나이다. 나는 문듯 이러케 生覺[생각]햇다.

「네 얼인 것들을 살닐가 내가 살어야 할가」

이 生覺[생각]으로 三日[삼일] 밤을 徹夜[철야]하엿사외다.

오냐 내가 잇는 後[후]에 萬物[만물]이 生[생]겻다. 子息[자식]이 生[생] 겻다. 아해들아 너희들은 일즉 붓허 逆境[역경]을 격거라 너희는 무엇보다 사람 自體[자체]가 될 거시다. 사난 거슨 學問[학문]이나 知識[지식]으로 사난 거시 아니다. 사람이라야 사난 거시다. 삭크 듯 룻 의 말에도「나는 學者[학자]나 軍人[군인]을 養成[양성]하난 것보다 먼저 사람을 기르노라」

하엿다. 내가 出家[출가]하는 날은 일곱 사람이 逆境(역경)에서 헤매는 날 이다. 그러나 이러나 내 個性[개성]을 爲[위]하야 一般[일반] 女性[여성]의 勝利[승리]를 爲[위]하여 짐을 부둥々々[부둥] 싸 가지고 出家[출가] 길을 차렷나이다.

北行車[북행차]를 탓다. 어대로 갈가 집도 업고 父[부]도 업고 兄弟[형제] 도 업고 子息[자식]도 업고 親舊[친구]도 업는 이 홀노된 몸 어대로 갈가 어대로 갈가 경성 에서 혼자 京城[ ] 살님하고 잇는 오래비 宅[댁]으로 갓섯나이다. 마침 제사 라 奉天[봉천]서 男兄[남형]이 도라 왓섯나이다. 임의 長札[장찰]노 事件[사건]의 始終[시종]을 말햇거니와 이番[번] 事件[사건]에 一切[일절] 自己[자기]는 나서지를 아니하고 自己[자기] 안해를 내여보내여 타협 交涉 (교섭)한 일도 잇섯나이다.

「何如間[하여간] 當分間[당분간]은 奉天[봉천]으로 가서 잇게 하자」

「C를 한 번 맛나보고 決定[결정]해야겟소」

「맛나보긴 무얼 맛나보아」

「일이 이만치 되고 K와 絶緣[절연]이 된 以上[이상] C와 緣[연]을 맷난 거시 當然[당연]한 일이 아니겟소」

「別[별]말 말어라 K가 只今[지금] 體面上[체면상] 엇저지를 못하야 그리 하난 거시니 奉天[봉천]가서 잇스면 저도 生覺[생각]이 잇겟지」

이 두어 친구는 絶對[절대]로 서울 나는 거슬 反對[반대]하엿나이다.

그는 서울 안에 돈 잇는 獨身[독신] 女子[여자]가 만하 K를 誘惑[유혹]하고 잇다는 거시엇사외다. 兄[형]은 이러케 말하엿다.

「다른 女子[여자]를 엇는다면 K의 人格[인격]은 다 알 수가 잇난 거시다.

다 運命[운명]에 맷기고 가자 가」

奉天[봉천]으로 갓섯나이다. 나는 진정 할 수 없섯나이다. 勿論[물론] 그 림은 그릴 수 업섯고 그대로 消日[소일]할 수도 업섯나이다. 나는 내 過去 [과거] 生活[생활]을 알기 爲[위]하야 草稿[초고]해 두엇든 原稿[원고]를 整理[정리]하엿사외다. 그 中[중]에 母性[모성]에 對[대]한 글 夫婦生活[부 부생활]에 對[대]한 글 愛人[애인]을 追憶[추억]하난 글 自殺[자살]에 對 [대]한 글 只今[지금] 當[당]할 모든 거슬 預言[예언]한 것갓치 되엿나이 다. 그리하야 前[전]에 生覺[생각]하엿든 바를 미루어 마음을 修襲(수습)할 수 잇섯든 거시외다. 한 달이 못 되여 密告[밀고] 片紙[편지] 왓섯나이다.

「K는 녀편네를 엇엇소 아해도 다려간다하오」

아직도 설마 手續[수속]지 하엿스랴 社會[사회] 體面[체면]만 免[면]하 면 和解[화해]가 되겟지 하고 밋고 잇든 나는 작 놀낫사외다. 兄[형]이 드러왓소이다.

「너 왜 밥도 안먹고 그리니」

「이것 좀 보」편지를 보엿다. 兄[형]은 보고 비笑[소]하엿다.

「제가 잘못 生覺[생각]이지 爲人[위인]은 다 알앗다 그짓것 斷念[단념] 해버리고 그림하고나 살어라. 傑作[걸작]이 나올지 아니?」

「나는 가 보아야겟소」

「어대로?」

「서울노 해서 東萊[동래]지」

「다 난 일을 가보면 무얼해 恥笑(치소)밧을 이지」

「그러니 사람이 되고서 그럴 수가 잇소 生活費[생활비] 한 푼 아니 주고 離婚[이혼]이 무어요」

「二個月間[이개월간] 別居生活[별거생활]하자는 誓約[서약]은 엇지된 貌 樣[모양]이야」

「그것도 제맘대로 取消[취소]한 거시지」

「그놈 밋첫군 밋첫서」

「나는 가서 生活費[생활비] 請求[청구]를 하겟소 아니 내가 번 거슬 찻겟 소」

「그러면 가보되 진중히 일을 해야 네 耻笑[치소]를 免[면]한다」

나는 釜山行[부산행] 汽車[기차]를 탓습니다. 京城[경성] 驛[역]에 나리니 電報[전보]를 밧은 T가 나왓습니다. T에 집으로 드러가 爲先[위선] 氏[씨] 의 旅舘[여관] 主人[주인]을 請[청]햇습니다. 나는 氏[씨]의 行動[행동]이 氏[씨] 혼자의 行動[행동]이 아니라 旅舘[여관] 主人[주인]을 爲始[위시]하 야 周圍[주위]에 잇는 親舊[친구]들의 충동인 거슬 안 닭이엿나이다.

「여보서요」

「예」

「친구의 가정이 不幸[불행]한 거슬 조와 하심니가 幸福[행복]된 거슬 조 와하심니가」

「녜 무르시난 을 알겟습니다. 넘어 오해하지 마십쇼」

나는 전혀 몰낫더니 하로는 짐을 가지고 나갑데다

「나도 그 女子[여자] 잘 아오 몃칠 살겟쇼」

T은 말한다.

나는 두어 친구로 同伴[동반]하야 北米倉町[북미창정] 氏[씨]의 살님 집을 向[향]하야 갓섯습니다. 나는 밧게 섯스랴니 氏[씨]가 웃줄々々[웃줄] 오 더니 그 집으로 드러가지 아니하고 내 압흘 지나갑니다.

「여보 茶[차] 집에 드러가 이야기 좀 합세다」

두 사람은 茶[차] 집으로 드러갓습니다.

「나 살 道理[도리]를 차려주어야 아니 하겟소」

「내가 아나 C더러 살녀 달래지」

「남의 걱정은 말고 自己[자기] 할 일이나 하소」

「나는 몰라」

나는 그 길노 府廳[부청]으로 가서 復籍手續(복적수속)을 무러 가지고 用 紙[용지]를 가지고 事務室[사무실]노 갓섯나이다.

「여보 復籍[복적]해주오」

「이게 무슨 소리야」

「지난 일은 다 이저 바리고 更生[갱생]하여 삽세다 당신도 破滅(파멸)이 오 나도 破滅[파멸]이오 두 사람에게 屬[속]한 다른 生命[생명]지 破滅 [파멸]이오」

「왜 그래」

「次々[차차] 살아보 당신 苦痛[고통]이 내 苦痛[고통]보다 甚[심]하리 다」

「누가 그런 걱정하래」

훌적 나가버린다.

그 잇흔날이외다. 나는 氏[씨]를 차자 事務室[사무실]노 갓사외다. 氏[씨] 는 마침 점심을 먹으려 自宅[자택]으로 向[향]하는 길이엇나이다.

「茶店[다점]에 드러가 나하고 이야기 좀 합세다」

氏[씨]는 아모 말업시 다름질을 하야 그 집 門[문]으로 쑥 드러섯나이다.

나도 不知不覺中[부지불각중] 드러섯나이다. 뒤를 아 房[방] 안으로 드러 섯나이다. 녀편네는 시간 걸네질을 치다가

「누구요」한다.

세 사람은 마조 처다보고 안젓다.

「영감을 만히 위해 준다니 고맙소 오날 내가 여기지 올란 거시 아니라 茶店[다점]으로 드러가 이야기 하잿더니 그냥 오기에 차 온 거시오」

「길에서 만히 보인 것 갓흔대요」

「그런지도 모르지요」

「내가 오날 온 거슨 이갓치 速[속]히 날 줄은 몰낫소 已往[이왕] 이러 케 된 以上[이상] 나도 살 道理[도리]를 차려 주워야 할 것 아니오 그러치 안으면 나도 이 집에서 살겟소 인사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게 인사를 차리겟 소」

氏[씨]는 아모 말업시 나가 버렷나이다. 나와 여편네와 담화가 시작되엿나 이다.

「대체 엇어케 된 일이오」

「그야 내게 무를 것 무엇 잇소 알한 남편에게 다 드럿겟소」

「그래 그림 그리는 재조가 잇으니 살기야 걱정 업겟지요」

「집행이 업시 이러시는 장수가 잇답데가」

나도 팔자가 사나와서 「 두 게집 노릇도 해보앗소마는 어린 것들이 잇서 오작 마음이 상하릿가 어린 것들을 보고십흘 는 어느 든지 보러 오시지 요」

「그야 내 마음대로 할 거시오」

「저 南山[남산] 댁이 소나무가 얼마나 高尙[고상]해 보이겟소마는 그 댁이에 올나가 보면 맛찬가지로 몬지도 잇고 흙도 잇슬 거시오」

「그 말삼은 내가 남의 妾[첩]으로 잇다가 本妻[본처]로 되여도 일반이겟 다는 말슴이지요」

氏[씨]가 다시 드러왓나이다. 세 사람은 다시 주거니 밧거니 이야기가 시 작되엿섯나이다.

이 어느 친구가 드러왓나이다. 그는 이번 事件[사건]에 和解[화해]식히 려고 애를 쓴 사람이엇나이다.

「무엇들을 그래시오」

「둘이 번 財産[재산]을 논하갓자는 말이외다」

「그 問題[문제]는 내게 一任[일임]하고 R 先生[선생]은 나와 갓치 나갑세 다 가시지오」

나는 더 잇서야 별 수 업슬듯하야 핑게삼아 이러섯나이다. 氏[씨]와 저녁 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하엿나이다.

나는 그 잇흔날 東萊[동래]로 내려갓사외다. 나는 機會[기회]를 타서 네 아해를 고 바다에 몸을 던질 決心[결심]이엿나이다. 내 態度[태도]가 이 상하엿는지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눈치를 채고 아해들을 고 듭니다. 機會 [기회]를 탈냐도 탈수가 업섯나이다.  다시 짐을 정돈하기 爲[위]하야 잠 겨두엇든 장문을 열엇나이다. 半[반]이 쑥 들어간 거슬 볼 작 놀낫나이 다.

「이 장문을 누가 겻쇠지를 햇서요」

「나는 모른다. 저번에 아범이 와서 열어 보더라」

「그래 여긔 잇든 물건을 다 엇졋서요」

「안방에 갓다두엇다」

「그것은 다 이리내노시오」

녀편네들 혀 에 놀아 장근 장을 겻쇠질하야 重要[중요] 物品[물품]을  내인 氏[씨]의 心思[심사]를 밉다고 할가 忿[분]하다고 할가 나는 마음을 눅켜서 生覺[생각]하엿나이다. 亦是[역시] 沒常識[몰상식]하고 沒人情[몰인 정]한 態度[태도]이외다 그만치 그가 쓸대업시 약어지고 그만치 그가 經濟 上[경제상] 逼迫(핍박)을 當[당]한 거슬 불상이 生覺[생각]하엿나이다 다시 最後[최후]의 出家[출가]를 決心[결심]하고 京城[경성]으로 向[향]하엿나이 다. 荒茫황망한 沙漠[사막]에 섯는 외로은 몸이엿나이다.

어대로 向[향]할가

母性愛[모성애]를 固守[고수]해보랴고 가진 애를 썻나이다. 이 点[점]으로 보아 良心[양심]에 붓그러울 아모 것도 업섯나이다.

나는 죽을 수 밧게 업는 사람이 되고 마럿나이다. 죽는 일은 쉽사외다. 한 번 決心[결심]만 하면 뒤는 極樂[극락]이외다. 그러고 내 使命[사명]이 무 어시 잇난 것 갓사외다. 업는 길을 찻는 거시 내 힘이오 업는 希望[희망]을 맨드는 거시 내 힘이엇나이다.

逆境[역경]에 處[처]한 者[자]의 要領[요령]은 努力[노력]이외다. 勤勉[근 면]이외다. 煩悶[번민]만 하고 잇는 동안은 타임은 가고 그 타임은 絶望[절 망]과 破滅[파멸]밧게 갓다주는 거시 업나이다. 나는 爲先[위선] 帝展[제 전]에 入選[입선]될 希望[희망]을 맨드럿나이다. 그림을 팔고 잇난 거슬 典 當[전당]하야 金剛山行[금강산행]을 하엿나이다. 舊[구] 萬物相[만물상] 萬 相亭[만상정]에서 一朔間(일삭간) 지내는 동안 大[대] 小品[소품] 二十介 [이십개]를 엇엇섯나이다. 여긔서 偶然[우연]히 阿部充家氏(아부충가씨)와 朴熙道[박희도] 氏[씨]를 맛낫사외다.

「아 이게 왼일이오」朴熙道[박희도] 氏[씨]는 나를 보고 놀낫사외다.

「先生[선생] 此處[차처]に Rさんが 居[거]りますよ」(선생 여기에 R씨 가 있군요) 阿部[아부] 氏[씨]는 우리 房[방] 문지방에 글터 안지며 有心[유심]히 내 얼골을 치어다 보앗나이다.

「御一人[어일인]で?」(혼자이십니까?)

「一人[일인]ものが 一人[일인]で 居[거]るのがあたりまへじや ありません か」(혼자몸이 홀로 있는게 당연하지 않아요)

「行[행]きましう」(갑시다) 氏[씨]는 强[강]한 語調[어조]로 同情[동정]에 넘치는 말이엇사외다.

「明日迄[명일흘] 出來[출래]あがる 繪[회]が ありますから 明日[명일]の 夕方下[석방하]りで 行[행]きましやう」(내일까지 완성될 그림이 있으니 내 일저녁때 내려가지요)

「ては ホテルで 待[대]つて 居[거]ります」(그럼 호텔에서 기다리지요)

「何卒[하졸]」(아무쪼록) 씨 氏[ ]는 한발을 질질 며 倚子[의자]에 안젓사외다. 타고 다니는 倚子 [의자]에

「人間[인간]もころつちやしまいですね」(인간도 이쯤 되면 끝장이지)

「先生[선생]どう 致[치]しまして」(선생도 별말씀을) 그 잇흔날 호텔에서 맛나도록 이야기하고 今番[금번] 鴨綠江(압록강) 上流 [상류] 一週[일주] 一行[일행] 中[중]에 添加(첨가)되도록 이야기가 進行 [진행]되엿섯나이다. 그 잇흔날 兩氏[양씨]는 朱乙溫泉(주을온천)으로 가시 고 나는 高城[고성] 海金剛[해금강]으로 갓섯나이다. 高城[고성] 郡守[군 수] 夫人[부인]이 東京[동경] 留學時[유학시] 親舊[친구]이엇든 關係上[관 계상] 그의 舍宅[사택]에 가서 盛饌[성찬]으로 잘 놀고 海金剛[해금강]에서 亦是[역시]아는 친구를 맛나 생복을 만히 엇어 먹엇나이다.

北靑[북청]으로 가서 一行[일행]을 맛나 惠山鎭(혜산진)으로 向[향]하엿나 이다. 厚岐嶺(후기령) 景色[경색]은 마치 一幅[일폭]의 南畵[남화]이엇나이 다. 一行[일행] 中[중] 阿部氏[아부씨] 朴榮喆氏[박영철씨] 두 분이 게서서 處處[처처]에 歡迎[환영]이며 宴會[연회]는 盛大[성대]하엿나이다. 新乫浦 (신갈포)로 鴨綠江[압록강] 上流[상류]를 一週[일주]하는 光景[광경]은 形 言[형언]할 수 업시 조왓섯나이다. 一行[일행]은 新義州[신의주]를 거처 京 城[경성]으로 向[향]하고 나는 奉天[봉천]으로 向[향]하엿나이다. 거긔서 그림 展覽會[전람회]를 하고 大連[대련]지 갓다 왓섯나이다. 그 길노 東 京行[동경행]을 차렷나이다. 大邱[대구]서 阿部氏[아부씨]을 맛나 慶州[경 주] 求景[구경]을 하고 進永[진영]으로 가서 拍間農場(박간농장)을 求景[구 경]하고 自働車[자동차]로 通度寺[통도사] 梵魚寺[범어사]를 지나 東萊[동 래]를 거처 釜山[부산]에 到着[도착]하야 連絡般[연락선]을 탓나이다. 東京 驛[동경역]에는 C가 出迎[출영]하엿섯나이다. 그는 意外[의외]에 내가 오는 거슬 보고 놀낫사외다.

巴里[파리]에서 그린 내게는 傑作[걸작]이라고 할만한 「庭園[정원]」을 帝展[제전]에 出品[출품]하엿섯나이다. 하로 밤은 入選[입선]이 되리라 하 야 깃버서 잠을 못 자고 하로 밤은 落選[낙선]이 되리라 하야 걱정이 되여 서 잠을 못 잣나이다. 千二百[천이백] 二十四点中[이십사점중] 二百点[이백 점] 選出[선출]에 入選[입선]이 되엿섯나이다. 넘어 깃붐에 넘처 全身[전 신]이 녓사외다. 新聞[신문] 寫眞班[사진반]은 밤중에 門[문]을 두다리고 라듸오로 放送[방송]이 되고 한 늬우스가 되어 東京[동경] 一板[일판]을 뒤 드럿사외다. 일노 因[인]하야 나는 面目[면목]이 섯고 내 一身[일신]의 生計[생계]가 生[생]겻나이다. 사람은 男子[남자]나 女子[여자]나 다 힘을 가지고 남니다 . 그 힘을 사람은 어느 時機[시기]에 가서 自覺[자각]함니다.

아모라도 한번이나 두 번은 다 自己[자기] 힘을 意識[의식]하엿나이다. 그 에 나는 퍽 幸福[행복]스러웟사외다. 아 阿部氏[아부씨]는 내가 更生[갱 생]하는데 恩人[은인]이외다. 精神上[정신상]으로나 物質上[물질상] 얼마나 힘을 써 주엇는지 그 恩惠[은혜]를 이즐 길이 업사외다.

母性愛[모성애]

幾百萬人[기백만인] 女性[여성]이 幾千年[기천년] 前[전] 옛날부터 子息 [자식]을 나하 길넛다. 이와 同時[동시]에 本能的[본능적]으로 盲目的(맹목 적)으로 肉體[육체]와 靈魂[영혼]을 無條件[무조건]으로 子息[자식]을 爲 [위]하야 밧처왓나이다. 이는 女性[여성]으로써 날 붓허 가지고 나온 한 道德[도덕]이엇고 한 義務[의무]이엇고 이보다 以上[이상]되는 天職[천직] 이 업섯나이다. 그럼으로 戀人[연인]의 사랑, 친구의 사랑은 相對的[상대 적]이오 報酬的[보수적]이나 어머니가 子息[자식]을 사랑하는 것만은 絶對 的[절대적]이오 無報酬的[무보수적]이오 犧牲的[희생적]이외다. 그리하야 最高[최고] 尊貴[존귀]한 거슨 母性愛[모성애]가 되고 마럿사외다. 만흔 女 性[여성]은 自己[자기]가 가진 이 母性愛[모성애]로 固[고]하야 얼마나 滿 足[만족]을 늣겻스며 幸福[행복]스러웟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로는 이 母 性愛[모성애]에 얽매여 하고 십흔 거슬 하지 못하고 悲慘[비참]한 運命[운 명] 속에서 울고 잇는 女性[여성]도 不少[불소]하외다. 그러면 이 母性愛 [모성애]는 女性[여성]에게 最高[최고] 幸福[행복]인 同時[동시]에 最高[최 고] 不幸[불행]한 거시 되고 마럿습니다. 女子[여자]가 自己[자기] 個性[개 성]을 잇고살  모든 生活保障[생활보장]을 男子[남자]에게 밧을  無限 [무한]이 便[편]하엿고 幸福[행복]스러웟나이다마는 女子[여자]도 人權[인 권]을 主張[주장]하고 個性[개성]을 發揮[발휘]할냐고 하며 男子[남자]만 밋고 잇지 못할 生活[생활]戰線[전선]에 나서게 된 今日[금일]에는 無限[무 한]한 苦痛[고통]이요 不幸[불행]을 늣길 도 잇는 거시외다.

나는 어느 듯 네 아희의 어머니가 되고 마럿사외다. 그러나 내가 애를 씨 고 애를 배고 애를 낫코 애를 젓먹여 길느는 거슨 큰 事實[사실]이외다. 내 가 母[모]된 感想記[감상기] 中[중]에 子息[자식]에 意味[의미]는 單數[단 수]에 잇는 거시 아니라 複數[복수]에 잇다고 하엿사외다. 果然[과연] 하나 길느고 둘 길느는 동안 只今[지금]지의 愛人[애인]에게서나 親舊[친구]에 게서 맛보지 못하는 愛情[애정]을 늣기게 되엿섯나이다. 毆米漫遊[구미만 유]하고 온 後[후]로는 子息[자식]에 對[대]한 理想[이상]이 서 잇게 되엿 섯나이다. 아해들의 個性[개성]이 눈에 우고 그들의 압길을 指導[지도]할 自信[자신]이 生[생]겻섯나이다. 그리하야 나는 그들을 길너 볼냐고 얼마나 애씨고 屈服[굴복]하고 謝罪[사죄]하고 和解[화해]를 要求[요구]하엿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거시 無用之物[무용지물]이 되고 마럿구려

禁慾生活[금욕생활]

夜半[야반]에 눈이 이면 虛空[허공]의 구석으로붓허 一陣[일진]의 바람 이 어대선지 모르게 부러드러옵니다. 그 孤寂[고적]이 가삼 속에 퍼지난 거슬 닷습니다. 只今[지금]지 내가 늣기는 孤寂[고적]은 압흔 거슨 잇 섯스나 害[해]될 거슨 업섯습니다. 只今[지금] 늣기는 孤寂[고적]은 毒草 [독초] 가시에 니는 자곡의 압흠을 다랏습니다. 어대로붓허 와서 어대 로 가는지 모르는 가온대서 무어슬 하든지 그 뒤는 孤寂[고적]합니다.

나는 所謂[소위] 貞操[정조]를 固守[고수]한다난 것보다 再婚[재혼]하기 지는 中心[중심]을 일치 말자는 거시외다 卽[즉] 내 마음 하나를 잇지 말자 는 거시외다. 나는 임의 中實[중실]을 일흔 사람이 되고 마럿습니다. 이에 中心[중심]지 일는 날은 내 前程[전정]은 破滅[파멸]이외다. 오직 中心 [중심] 하나를 붓잡기 爲[위]햐야 絶對[절대] 禁慾[금욕] 生活[생활]을 하 여왓사외다.

男女[남녀]를 勿論[물론]하고 姙娠[임신] 時期[시기]에 잇서는 禁慾生活 [금욕생활]이 容易[용이]한 일이 아니외다. 나도 이만은 胎夢[태몽]을  면서 苦痛[고통]으로 지내나이다.

나는 處女[처녀]와 갓고 寡婦[과부]와 갓흔 心理[심리]를 가질 가 從々 [종종] 잇나이다. 그러고 獨身者[독신자]에게는 이러한 警句[경구]가 잇난 거슬 이저서는 아니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許諾[허락]할가 한 사람에게 도 許諾[허락]치 말가」異性[이성]의 사랑은 무섭다. 사람의 熱情[열정]이 無限[무한]이 올나 가는 거시 아니라 寒暖計(한난계)의 水銀[수은]이 百度 [백도]지 올나 갓다가 도로 底下[저하]하드시 사랑의 焦点[초점]을 百度 [백도]라 치면 其[기] 以上[이상] 올나가지 못하고 底下[저하]하난 거시외 다. 그리하야 熱情[열정]이 高上[고상]할 時[시]는 相對者[상대자]의 行動 [행동]이 美化[미화] 善化[선화]하나 底下[저하]할 時[시]는 餘地[여지]업 시 醜化[추화] 惡化[악화]해지는 거시외다. 나는 이거슬 잘 압니다. 그리하 야 사랑이 움돗을 만하면  부질너 바림니다. 나는 그 底下[저하]한 뒤 孤 고적 을 무서워함입니다 寂[ ] . 실혀함입니다. 이번이야말로 다시 이런 傷處 [상처]를 밧게되는 날은 갈 곳 업시 死地[사지]로 밧게 도라갈 길이 업는 닭입니다. 아 무서운 것!

寂寞[적막]한 거시 사람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은 사라잇난 거시 無意味[무 의미]로 生覺[생각]하기에는 넘으 깁흔 感覺[감각]을 주난 거슬 알 수 잇습 니다. 어대 굴니든지 엇더케 하든지 거긔지 가는 사람은 恩澤[은택]입은 사람입니다. 寂寞[적막]에서 도라오는 그거시 우리의 希望[희망]일는지 모 릅니다.

아, 사람은 혼자 살기에는 넘으 적습니다. 타임의 一日[일일]은 르나 그 타임의 繼續[계속]한 一年[일년]이나 二年[이년]은 깁니다.

離婚[이혼] 後[후] 所感[소감]

나는 사람으로 태여난 거슬 後悔[후회]합니다. 나는 사람으로 태여나고 십 허 태여난 거시 아니라 사람이 엇더한 거신지 이 世上[세상]이 엇더한 곳인 지 모르고 태여난것 갓사외다. 이 人生[인생]됨이 더 醜[추]하고 悲慘[비 참]한 거시오 더 絶望的[절망적]으로 되엿다 하더라도 나는 怨罔[원망]치 아니 합니다. 只今[지금] 나는 죽어도 살어도 갓다고 生覺[생각]합니다.

죽음은 무서운 거시외다. 그럴 마다 自己[자기]를 참으로 살녓는지 아니 하엿는지 봅니다. 나는 自己[자기]를 참으로 살닐 는 죽음이 무섭지 안사 외다. 다만 自己[자기]를 다 살니지 못 하엿슬  죽음이 무섭습니다. 그런 故[고]로 죽음의 恐怖[공포]를 다를 마다 自己[자기]의 不德[부덕]함을 痛切[통절]이 늣김니다.

나는 自己[자기]를 淺薄(천박)하게 맨들고 십지 안은 同時[동시]에 他人 [타인]을 怨望[원망]하기 前[전]에 自己[자기]를 反省[반성]하고 십습니다.

自己[자기] 內心[내심]에 淺薄[천박]한 마음이 生[생]기는 것을 알고 곳치 지 안코는 잇지 못하는 사람은 人類[인류]의 寶物[보물]이외다. 이러한 사 람은 발서 自己[자기] 마음속에 잇는 雜草[잡초]를 잇고 조흔 씨를 이르난 곳마다 펼치어 사람 마음의 樣式[양식]이 되는 者[자]외다. 卽[즉] 孔子[공 자]나 釋迦[석가]나 耶蘇[야소]와 갓흔 사람이외다. 太陽[태양]은 萬物[만 물]을 겁게 아니 하랴도 自然[자연] 더웁게 맨듭니다. 아모런 거시 오더 라도 그거슬 비최이는 材料[재료]로 化[화]해 버림니다. 바다는 아모리 더 러온 거시 더라도 自體[자체]를 더럽히지 안습니다.

모든 사람의 境遇[경우]와 處地[처지]를 生覺[생각]해보자 그 거긔에서 자기 自己[ ]를 찻습니다. 사랑을 닷습니다. 그럼으로 自己[자기]가 要求 [요구]하난 사람을, 먼저 自己[자기]를 맨들거십니다. 사람은 自己[자기] 內心[내심]의 自己[자기]도 모르는 정말 自己[자기]를 가지고 잇습니다. 보 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自己[자기]를 차자내는 거시 사람 一生[일생]의 일거 립니다. 卽[즉] 自我發見[자아발견]이외다. 사람은 쓸대업는 格式[격식]과 世間[세간]의 體面[체면]과 半[반] 아는 學問[학문]의 束縛속박을 만히 밧습니다. 잇스면 잇슬사록 더 가지고 십흔거시 돈이외다. 놉흐면 노흘사록 더 놉허지고저 하난 거시 地位[지위]외다. 가지면 가진이만치 陰氣(음기)로 되난 거시 學問[학문]이외다. 사람의 幸福[행복]은 富[부]를 得[득]한 도 아니오 일흠을 엇은 도 아니오 엇던일에 一念[일념]이 되엿슬 외다 一 念[일념]이 된 瞬間[순간]에 사람은 全身[전신] 洗淸(세청)한 幸福[행복]을 닷습니다. 卽[즉] 藝術的[예술적] 氣分[기분]을 닷는 외다.

人生[인생]은 苦痛[고통] 그거실는지 모릅니다. 苦痛[고통]은 人生[인생] 의 事實[사실]이외다. 人生[인생]의 運命[운명]은 苦痛[고통]이외다. 一生 [일생]을 두고 苦病[고병]을 깁히 맛보는대 잇습니다. 그리하야 이 苦痛[고 통]을 明確[명확]히 사람에게 알니우는대 잇습니다. 凡人[범인]은 苦痛[고 통]의 支配[지배]를 밧고 天才[천재]는 죽음을 가지고 苦痛[고통]을 익여내 여 榮光[영광]과 權威[권위]를 取[취]해낼만한 살 方針[방침]을 차림니다.

이난 苦痛[고통]과 快樂[쾌락] 以上[이상] 自己[자기]에게 使命[사명]이 잇 난 닭이외다. 그리하야 最後[최후]는 苦痛[고통] 以上[이상]의 것을 맨들 고 맙니다.

煩惱(번뇌) 中[중]에서도 일의 始初[시초]를 지어 잇는다.

내 갈길은 내가 차자 엇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自己[자기] 運命[운명]이 엇지 될지 모릅니다. 속매듸를 지은 運命[운명]이 잇습니다. 을 수 업는 運命[운명]의 鐵鎖(철쇄)이외 다. 그러나 넘으 悲慘[비참]한 運命[운명]은 往々[왕왕] 弱[약]한 사람으로 하여곰 叛逆(반역)케 합니다. 나는 거의 再起[재기]할 氣分[기분]이 업슬만 치 리고 辱[욕]하고 咀呪(저주)함을 밧게 되엿습니다. 그러나 나는 必竟 [필경]은 갓흔 運命[운명]의 줄에 얼키어 업서질지라도 必死[필사]의 爭鬪 (쟁투)에 니고 애태우고 苦[고]로워 하면서 再起[재기]하랴 합니다.

朝鮮[조선] 社會[사회]의 人心[인심]

우리가 歐米[구미] 漫遊[만유]하기지 그다지 甚[심]하지 아니 하엿다마 는 갓다와서 보니 前[전]에 比[비]하야 一般[일반] 레벨이 훨신 놉하진 거 시 完然[완연]히 눈에 웟습니다. 그리하야 有識[유식] 階級[계급]이 만하 진 同時[동시]에 生存競爭[생존경쟁]이 尤甚[우심]햐여젓습니다. 生活[생 활] 戰線[전선]에 선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은, 貯蓄[저축]업고 職業 [직업] 업고 實力[실력]업시 살길에 헤매여 할 수 업시 大阪[대판]으로 滿 洲[만주]로 男負女戴(남부여대)하야 가는 者[자]가 不少[불소]하외다. 果然 [과연] 朝鮮[조선]도 이제는 돈이 잇든지 實力[실력] 卽[즉] 才操[재조]가 잇든지 하여야만 살게 되엿사외다.

思想上[사상상]으로 보면 國際的[국제적] 人物[인물]이 通行[통행]하는 關 係上[관계상] 各[각] 方面[방면]의 主義[주의] 思想[사상]이 收入[수입]하 게 됩니다. 이에 좁게 알고 널니 보지 못한 사람으로 그 要領[요령]을 取得 [취득]하기에 彷徨[방황]하는 거슨 當然[당연]한 理治[이치]입니다. 비빔밥 을 그냥 먹을 이오. 그 中[중]에서 맛을 取[취]할 줄 모르난 거시 大部分 [대부분]입니다. 그럼으로 오날은 이 主義[주의]에서 놀다가 내일은 저 主 義[주의]에서 놀게 되고 오날은 이 사람과 親[친]햇다가 내일은 저 사람과 親[친]하게 됨니다. 一定[일정]한 主義[주의]가 確立[확립]치 못하고 固立 [고립]한 人生觀[인생관]이 서지를 못하야 바람에 날니는 갈대와 갓흔 時日 [시일]을 보내고 맙니다. 이는 大槪[대개] 政治[정치] 方面[방면]에 길이 맥히고 經濟[경제]에 얽매여 自己[자기] 마음을 自己[자기]가 마음대로 가 질 수 업는 關係[관계]도 잇겟지만 넘어 散漫的[산만적]이 되고 마럿나이 다.

朝鮮[조선]의 有識[유식] 階級[계급] 男子[남자] 社會[사회]는 불상합니 다. 第一[제일] 舞臺[무대]인 政治[정치] 方面[방면]에 길이 맥키고 배호고 싸은 學問[학문]은 用道[용도]가 업서지고 이 理論[이론] 저 理論[이론] 말 해야 理解[이해]해 줄 社會[사회]가 못되고 그남아 사랑에나 살아볼가 하나 家族制度[가족제도]에 얽매인 家庭[가정] 沒理解(몰이해)한 妻子[처자]로 하야 눈쌀이 흐려지고 生活[생활]이 辛酸[신산]스러울 입니다. 애매한 料理[요리]집에나 出入[출입]하며 罪[죄]업는 술에 투정을 다하고 沒常識 [몰상식]한 妓生[기생]을 품고 즐기나 그도 亦是[역시] 滿足[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리가 보면 날가 저 사람을 맛나면 날가 하나 남는 거슨 오직 孤寂[고적] 입니다.

有識[유식] 階級[계급] 女子[여자] 卽[즉] 新女性[신여성]도 불상하외다. 아직도 封建時代봉건시대 家族制度[가족제도] 밋헤서 자라나고 시집가고 살 님하는 그들의 內容[내용]의 複雜[복잡]이란 말할 수 업시 難局[난국]이외 다. 半[반] 아는 學問[학문]이 新舊式[신구식]의 調和[조화]를 일케할  이오 陰氣[음기]를 돗을 이외다. 그래도 그대들은 大學[대학]에서 專門 [전문]에서 人生哲學[인생철학]을 배호고 西洋[서양]에나 東京[동경]에서 그들의 家庭[가정]을 求景[구경]하지 아니 하엿는가 마음과 은 하눌에 잇 고 몸과 일은 에 잇는 것이 아닌가 달콤한 사랑으로 結婚[결혼]하엿스나 너는 너요 나는 나대로 놀게 되니 사는 아모 意味[의미]가 업서지고 아침붓 허 저녁지 반찬 걱정만 하게 되난 것이 아닌가 及其[급기] 神經過敏(신경 과민) 神經衰弱[신경쇠약]에 걸녀 獨身[독신] 女子[여자]를 부러워하고 獨 身主義[독신주의]를 主張[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女性[여성]을 普通[보통] 弱者[약자]라 하나 結局[결국] 强者[강자]이며 女性[여성]을 적다하나 偉大 [위대]한 거슨 女性[여성]이외다. 幸福[행복]은 모든 거슬 支配[지배]할 수 잇는 그 能力[능력]에 잇난 거시외다 家庭[가정]을 支配[지배]하고 남편을 支配[지배]하고 子息[자식]을 支配[지배]한 남어지에 社會[사회]지 支配 [지배]하소서 最後[최후] 勝利[승리]는 女性[여성]에게 잇난 것 아닌가

朝鮮[조선] 男性[남성] 心思[심사]는 異常[이상]하외다. 自己[자기]는 貞操觀念[정조관념]이 업스면서 妻[처]에게나 一般[일반] 女性[여성]에게 貞操[정조]를 要求[요구]하고  남의 貞操[정조]를 아실냐고 합니다. 西洋[서양]에나 東京[동경] 사람 하더라도 내가 貞操觀念[정조관념]이 업스면 남의 貞操觀念[정조관념] 업난 거슬 理解[이해]하고 尊敬[존경]합니다. 남의게 貞操[정조]를 誘引[유인]하는 以上[이상] 그 貞操[정조]를 固守[고수]하도록 愛護[애호]해주는 것도 普通[보통] 人情[인정]이 아닌가 從々[종종] 放縱(방종)한 女性[여성]이 잇다면 自己[자기]가 直接[직접] 快樂[쾌락]을 맛보면서 間接[간접]으로 抹殺(말살)식히고 咀嚼(저작)식히난 일이 不少[불소]하외다 이 어이한 未開明[미개명]의 不道德[부도덕]이냐 朝鮮[조선] 一般[일반] 人心[인심]은 過度期[과도기]인만치 탁 터나가지를 못하면서 內心[내심]으로는 그런거슬 要求[요구]합니다. 經濟[경제]에 얽매여 옴치고  수 업스나 지글々々[지글] 는 感情[감정]을 풀곳이 업다가 누가 압흘 서난 사람이 잇스면 可否[가부]를 莫論[막론]하고 批難[비난]하며 그들에게 確實[확실]한 人生觀[인생관]이 업는만치 事物[사물]에 解決[해결]이 업스며 同情[동정]과 理解[이해]가 업시 形勢[형세]닷는 대로 이리 긋기고 저리 긋기게 됩니다. 무슨 方針[방침]을 세워서라도 救[구]해줄 生覺[생각]은 少毫[소호]도 업시 마치 演劇[연극]이나 活動寫眞[활동사진] 求景[구경] 하드시 滋味[자미]스러워 하고 鼻笑[비소]하고 즐叱[질]하야 일  先眼[선안]에 着心[착심]하엿든 有望[유망]한 靑年[청년]으로 하여곰 萎縮(위축)의 不具者[불구자]를 맨드는 것 아닌가 보라 歐米[구미] 各國[각국]에서는 突飛[돌비]한 行動[행동]하는 者[자]를 流行[유행]을 삼아 그거슬 獎勵(장려)하고 그거슬 人材[인재]라 하며 그거슬 天才[천재]라 하지 안는가 그럼으로 압흘 다토아 創作物[창작물]을 내나니 이럼으로 日進月步[일진월보]가 보이지 안는가 朝鮮[조선]은 엇더한가 조곰만 變[변]한 行動[행동]을 하면 곳 抹殺[말살]식혀 再起[재기]치 못하게 하나니 古今[고금]의 例[예]를 보아라 天才[천재]는 當時[당시] 風俗[풍속] 習慣[습관]의 滿足[만족]을 갓지 못할  아니라 次代[차대]를 推測[추측]할 수 잇고 創作[창작]해낼 수 잇나니 變動[변동]을 行[행]하는 者[자]를 엇지 輕率(경솔)이 볼가보냐 可恐[가공]할 거슨 天才[천재]의 싹을 분질너 놋는 거시외다. 그럼으로 朝鮮[조선] 社會[사회]에는 今後[금후]로는 第一線[제일선]에 나서 活動[활동]하는 사람도 必要[필요]하거니와 第二線[제이선] 第三線[제삼선]에 處[처]하야 有望[유망]한 靑年[청년]으로 逆境[역경]애 處[처]하엿슬 그길을 틔워주는 援助者[원조자]가 잇서야할 거시오 事物[사물]의 原因[원인] 動機[동기]를 深察(심찰)하야 쓸대업는 道德[도덕]과 法律[법률]노서 裁判[재판]하야 큰 罪人[죄인]을 맨들지 안는 理解者[이해자]가 잇서야 할거십니다.

靑邱[청구] 氏[씨]에게

氏[씨]여 이만하면 러저 잇는 동안 내 生覺[생각]을 알겟고 變動[변동] 된 내 生活[생활]을 알겟사외다. 그러나 여보서요 아직지도 나는 내게 適 當[적당]한 幸福[행복]된 길이 어대 잇는지를 찻지 못하엿서요 氏[씨]와 同 居[동거]하면서 々[]로 意思衝突(의사충돌)을 하며 아해들과 살님사리 에 엄벙덤벙 時日[시일]을 보내는 거시 幸福[행복]스러웟섯슬는지 는 放 浪生活[방랑생활]노 나서 스켓취 스를 메고 감파스에 그림 그리고 다니는 이 生活[생활]이 幸福[행복]스러 울지 모르겟소 그러나 人生[인생]은 家庭 [가정]만도 人生[인생]이 아니오 藝術[예술]만도 人生[인생]이 아니외다.

이것저것 合[합]한 거시 인생이외다 마치 水素[수소]와 酸素[산소]가 合 [합]한 거시 물인 것과 가치, 여보서요 내 主義[주의]는 이러해요 사람 中 [중]에는 普通[보통]으로 사는 사람과 普通[보통] 以上[이상]으로 사는 사 람이 잇다고 봅시다. 그러면 그 普通[보통] 以上[이상]으로 사는 사람은 普 通[보통]사람 以上[이상]의 精力[정력]과 個性[개성]을 가진 者[자]외다.

더구나 近代人[근대인]의 理想[이상]은 남의 하는 일을 다 하고 남는 精力 [정력]으로 自己[자기] 個性[개성]을 發揮[발휘]하는 거시 가장 最高[최고] 理想[이상]일 거시외다. 그난 理論[이론]이 아니라 實例[실례]가 만흐니 偉人[위인] 傑士(걸사)들의 生活[생활]은 그러하외다. 卽[즉] 修身齊家治國 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古今[고금]이 다를 것 업나이다. 나는 이러 한 理想[이상]을 가지고 十年[십년] 家庭生活[가정생활]에 내 일을 繼續[계 속]해왓고 自今[자금]으로도 實行[실행]할 自信[자신]이 잇든 거시외다 그 럼으로 部分的[부분적]이 내 生活[생활] 幸福[행복]이 될 理[리] 萬無[만 무]하고 綜合的[종합적]이라야 정말 내가 要求[요구]하는 幸福[행복]의 길 일 거시외다. 이 理想[이상]을 破壤[파괴]케 됨은 엇지 遺憾[유감]이 아니 릿가 感情[감정]의 循環期(순환기)가 十年[십년]이라 하면 실혓든 사람이 조와 도지고 조왓든 사람이 실여도 지며 親[친]햇든 사람이 머러도 지고 머럿든 사람이 親[친]해도 지며 善[선]한 사람이 惡[악]해도 지고 惡[악]햇든 사람 이 善[선]해도 지나이다. 氏[씨]의 十年[십년] 後[후] 感情[감정]은 엇어케 될가 以上[이상]에도 말하엿거니와 夫婦[부부]는 세 時機[시기]를 지나야 정말 夫婦生活[부부생활]의 意味[의미]가 잇다고 하엿습니다. 나는 임의 그 대의 長處短處[장처단처]를 다 알고 氏[씨]는 내의 長處短處[장처단처]를 다 아는 以上[이상] 互相補助(호상보조)하야 살어갈 우리가 아니엿든가 何如間[하여간] 以上[이상] 몃가지 主義[주의]로 離婚[이혼]은 내 本意[본 의]가 아니오 氏[씨]의 强請[강청]이 엿나이다 나는 無抵抗的(무저항적)으 로 讓步[양보]한 거시니 千萬番[천만번] 生覺[생각]해도 우리 處地[처지]로 우리 人格[인격]을 統一[통일]치 못하고 우리 生活[생활]을 統一[통일]치 못한 거슨 부그러운 일입니다.

어울너 바라난 바는 八十[팔십] 老母[노모]의 餘生[여생]을 便[편]하게 하 고 네 아해의 養育[양육]을 充分[충분]이 注意[주의]해 주시고 남어지는 氏 [씨]의 健康[건강]을 바라나이다.

一九三四, 八 (『三千里[삼천리]』, 1934. 9)

평가와 의의

삼천리』 잡지 8·9호에 나누어 실린 「이혼 고백장」은 글이 나가자마자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나혜석을 동정하는 여론도 없지는 않았으나 절대다수는 비판적이었다.
심지어는 여성들 가운데서도 눈살을 찌푸리고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성과 대등한 여성으로서의 여성성(女性性)을 회복하자는 나혜석의 절규는 막상 여성 자신들로부터도 적극적인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동아일보가 발행하던 여성잡지 『신가정』에서 ‘나혜석 씨에게’라는 제목의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그러한 고백장을 사회에 적나라하게 발표하는 당신의 태도에 반감과 불쾌감을 느꼈다.
- 필요 없는 폭로는 악취미요, 병적이다. 사남매의 어머니로서 그 노출증적 광태(狂態)를 버렸어야 하지 않않겠는가.
- “아내 있는 남자나 남편 있는 여자가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와 좋게 지내면 자기 아내나 자기 남편과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당신의 글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이 글의 진의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논란이 될 만한 또 다른 발언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나혜석을 문란한 여자라고 규정지었다.
이혼 절차를 밟고 있던 중 일어난 김우영의 외도와 시댁의 횡포, 양육권 및 재산분할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신여성이라 불리던 여성 지식인들의 연애와 결혼이 유독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던 한국 근대사회의 풍경을 나혜석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공인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에게 스캔들은 치명상이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존립 근거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최대한 감추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하지만 나혜석은 정반대의 길을 택하여 직접 말하고 직접 글을 쓰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가 정작 바라는 일은 여성들의 발화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이러한 구조를 오랫동안 체험했기 때문에 침묵이 보신(保身)의 길임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순에 저항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와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혜석의 삶과 글은 역사적 가치를 획득할 자격을 갖추었다.

관련 자료

관련 도서

  • 나혜석 - 이혼고백서 (2021.03.25 / 9의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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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혜석 - 나혜석의 고백 (2021.12.10 / 이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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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고백서 삼천리 A를 B에 발표하다.
이혼고백서 나혜석 A를 B가 집필했다.
이혼고백서 김우영 A는 B와의 이야기다.
이혼고백서 페미니즘 문학 A는 B의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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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유마당 이혼고백서

정규웅. (2003). 나혜석 평전. 중앙M&B.

나혜석. (2018).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민음사

작성자

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