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鄭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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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鄭歚) WIKI

인물

겸재(謙齋) 정선(鄭敾)조선 후기에 유행한 진경산수화와 남종문인화의 새 바람을 일으킨 선비화가이다.
조선후기「인왕제색도」,「금강전도」,「통천문암도」등을 그렸다.

기본정보

정선(鄭歚))

분류 내용
이칭별칭 자 원백(元伯), 호 겸재(謙齋), 겸초(兼艸), 난곡(蘭谷)
유형 인물
시대 조선후기
출생-사망 1676년(숙종 2) ~ 1759년(영조 35)
성격 화가
성별
본관 광주(光州)

생애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金昌集)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위수(衛率: 왕세자를 따라 호위하는 직책)라는 벼슬을 비롯하여, 1729년에 한성부주부, 1734년 청하현감을 지냈다. 또 자연·하양의 현감을 거쳐 1740년경에는 훈련도감낭청(訓練都監郎廳), 1740년 12월부터 1745년 1월까지는 양천의 현령을 지냈다.
그 뒤 약 10년 동안은 활동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1754년에 사도시첨정(司imagefont寺僉正), 1755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그리고 1756년에는 화가로서는 파격적인 가선대부 지중추부사(嘉善大夫知中樞府事)라는 종2품 관직에 내려지기까지 하였다.

작품

인왕.jpg

금강전도.jpg

육상묘도.jpg

청풍계지각.jpg

풍악도첩.jpg


평가

18세기 조선 화단을 이끌었던 강세황은 겸재 정선(鄭歚)이 실제 경치를 잘 그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세황은 진경을 그릴 때는 각 장면에서 알맞은 화법을 찾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정선(鄭歚)의 산수화를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정(鄭)은 그가 평소에 익숙한 필법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돌 모양이나 봉우리 형태를 일률적으로 '열마준법(裂麻皴法)'으로 함부로 그려서 그가 진경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여담

겸재정선미술관

겸재 정선(鄭歚)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현 강서구청장)으로 있으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 기념비적인 불멸의 걸작을 남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2009년 4월, 강서구에서 정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조선시대 양천현아지 인근에 겸재정선미술관을 개관.
정선은 여행을 즐겼기에 금강산, 반구대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작품은 대부분 리움미술관,간송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은 DDP에서 진경 산수화 소장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정선(鄭歚) 생가의 터가 경복고등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다.

관련영상

작성자: 송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