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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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21학번)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5일 (일) 17:2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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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02년에 출생해서 1950년 사망한 일제강점기 시기와 미군정 시기에 활동한 작가이며,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대표작으로는 탁류, 인형의 집을 나와서, 금의 정열, 태평천하, 어머니, 아름다운 새벽, 치숙, 패배자의 무덤, 미스터 방, 레디메이드 인생, 제향날이 있다.

소개

생애

성장 과정 및 작가로서 등단하기 전의 삶

채만식 작가는 1902년 06월 17일에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채규섭(蔡奎燮)과 어머니 조우섭(趙又燮)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아들이다.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고, 임피보통학교(현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18년에 서울로 이사갔다.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22년에 졸업했다.

졸업한 후 같은 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간토 대학살을 피해 1년 만인 1923년에 중퇴한 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뒤 1924년부터 개벽(開闢)사, 동아일보(東亞日報)사, 그리고 조선일보(朝鮮日報)사에서 기자로 전전했다. 이때, 월간 대중잡지인 별건곤(別乾坤)과 월간종합잡지인 혜성(彗星)제일선(第一線) 등의 편집을 맡았다.[2]

작가로서의 등단 후 활동

이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기자로 생활하다가, 채만식은 1924년에 「세길로」라는 작품을 조선문단(朝鮮文壇)이라는 문예잡지에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 등단했다. 1936년 이후에는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않고 작품 창작을 주로 하면서 생활했고, 이 과정에서 총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소설 및 단편소설과 희곡, 평론, 그리고 수필을 집필했다.

특히 채만식 작가는 1930년대에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칭할 만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발표되었다. 그 예시로, 장편소설으로는 「탁류(濁流, 1937~1938)」,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1938)」,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그리고 「금(金)의 정열(1939)」 등이 있다. 또한, 단편소설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痴叔, 1938)」, 그리고 「패배자의 무덤(1939)」 등이 있다. 추가로, 희곡으로는 「제향날(1937)」「당랑(螳螂)의 전설(1940)」 등이 있다.[3]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풍자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작가로서 거듭났다.

친일파 생활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생활하다가, 1942년에 채만식은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라는 친일문화단체가 주관한 행사인 순국영령방문행사에 참석하면서 친일 행보를 시작했다. 1943년부터 1944년 사이에는 매일신보{每日申(新)報}, 춘추(春秋) 등의 매체에 글을 써서 태평양 전쟁(太平洋 戰爭)을 일으킨 일제(일본 제국, 大日本帝国)를 선전하고, 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선동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이라는 친일단체가 주관했던 보도특별정신대, 생산지 증산 위문 파견, 그리고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같은 행사에 참여했다. 또한, 1943년에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라는 친일적인 문화 단체에 평의원으로 가담하면서 친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때, 「아름다운 새벽(1942)」이나 「여인전기(1945)」같은 친일적인 사상을 깊게 담은 작품도 집필했다.[4]

말기

채만식 작가는 1945년에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 다음해에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로 이사한 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계속 생활했다. 이때, 「민족의 죄인(1948)」을 집필하면서 친일파였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했다. 또한, 「이상한 선생님(1945)」, 「논 이야기(1946)」, 「미스터 방(方)(1946)」, 그리고 「맹순사(1946)」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미군정 시기의 부조리하고 혼란스러웠던 현실을 풍자했다. 하지만, 6.25 전쟁 2주 전인 1950년 06월 11일에 결국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5]

사후

지난 2001년에, 채만식 작가를 기리기 위해 채만식문학관이 설립되었다.[6]

또한,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채만식 작가의 작가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소설가들에게 수여하는 채만식 문학상을 제정했다.[7]

학력

학교 상태
채만식의 학력 정리
임피초등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졸업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 중퇴

출생지 및 사망지

출생지

채만식작가가 태어난 곳은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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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채만식작가가 사망한 곳은 대한민국 전라북도 익산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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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작품 분류 설명
감독의 아내 희곡 채만식의 희곡으로, 공장 노동자와 관련된 문제를 부정하기 위한 작품으로서, 노동쟁의에 참가하고 있는 여공이 직공감독인 남편에 의해 가정에서 쫓겨나고, 회사에서 동원한 폭력배들의 위협을 받고, 마침내는 순사에게 잡혀가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강선달 소설 채만식의 단편소설로, 아버지를 모시고 싶어하는 강선달의 막내아들 삼준과 전라도 집으로 내려간다고 고집을 부리는 강선달에 대한 내용이다.
과도기 소설 1973년 <문학사상에>에 2회 분재된 채만식의 장편소설로, 이 작품은 1923년경 탈고 후 발표되지 않고 있다가 채만식의 아들이 공개하여 공개되었다. 당대의 젊은 지식층이 조선의 구습(舊習) 속에서 겪는 혼란과 방황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자, 창작의 자유를 억압했던 일제의 문학 검열을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다.
그 뒤로 소설 1929년 발표된 단편소설로, 서대문 형무소를 나오는 P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가정 풍경 희곡 채만식의 희곡으로, 재혼한 아내와 아들을 거느리고 사회 운동의 어려움과 희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근일 소설 1941년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낙일 희곡 1930년 발표된 희곡으로, 지주의 가정을 통해 봉건적 사유와 삶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작품이다.
낚시질의 풍파 희곡 채만식의 희곡으로, 낚시질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1~7, 갑, 을, 병, 정을 통해 보여준다.
냉동어 소설 1940년 <인문평론>에 발표된 장편소설로, 일제 말의 질곡 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잃고 시체가 되어가는 지식인과 조선인을 '냉동어'로 표현하고, 소설 속 딸의 이름으로 지은 '문증상'은 맑은 절개와 맑은 충성을 함축하여 표현하며 작가의 신념과 항일 투쟁 의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논 이야기 소설 1946년 <해방문학선집>에 발표된 단편소설로, 일제 강점기와 독립시기를 배경으로 농민들의 팍팍한 삶을 그리고 있다. 나라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농민들의 힘겨움이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농촌 스켓치 희곡 1930년〈별건곤(別乾坤)>지에 발표된 희곡으로, 2막 4경으로 구성돼 있다.
당랑의 전설 희곡 1940년 <인문평론>에 발표된 희곡으로, 재산을 압류하려는 집달리와 박진사긴의 다툼과 실랑이를 담았다.
도야지 소설 1948년 발표된 단편소설로, 해방 후의 혼란한 시대상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동화 소설 1938년 발표된 장편소설로,‘보리방아’ 연작으로 불린다. 내용상 「동화」는 「보리방아」를 축소한 이야기로 보인다.
두 순정 소설 1938년 발표된 단편소설로, 산중 노승이 들려준 꼬마신랑과 새색시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두부 희곡 채만식의 희곡으로, 경성의 겨울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레디메이드 인생 소설 1934년 <신동아>발표한 단편소설로, 1930년대의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 관계의 긴장 및 소외감을 다룬 작품이다.
맹순사 소설 1946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해방 직후, 미온적이었던 친일파 청산 문제와 허술한 행정 체계를 다룬 소설로 맹순사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 경찰을 그대로 채용할 뿐 아니라 해방 전 깡패였던 일자무식꾼에서부터 살인강도로 무기징역을 살았던 흉악범까지 경찰행세를 하게 하는 혼탁한 현실을 비판한 작품이다.
명일 소설 1936년 <조광>에 발표된 중편소설로,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무능력함과 생활고를 주제로 한 내용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작자의 앞선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과 같은 의미선상에 놓인다.
목침맞은 사또 희곡 채만식의 희곡으로, 1880년경 전라도 어느 소읍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미가 대폭락 희곡 채만식의 희곡으로, 농민의 경제적 궁핍을 사실적 기본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미스터 방 소설 1946년 <대조> 에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소설로, 해방기의 혼란상을 미군과 통역의 문제를 통해 풍자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민족의 죄인 소설 1948년 친일 행위의 불가피함을 자세히 서술한, 일종의 자기변명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반점 소설 십대에 철 없이 남긴 자신의 반점을 찾아 나선 이야기의 소설작품이다.
희곡 동맹파업을 한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 간의 대립을 그린 작품이다.
배 비장 소설 1943년 『전문서관』에서 출판되었으며 조선후기 판소리 소설『배비장』을 바탕으로 소설화한 작품이다.
병이 낫거든 소설 1941년에 출간된 중편소설이다.
병조와 영복이 소설 1930년대 출간된 소설작품이다.
보리방아 소설 1936년 조선일보 연재 중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연재 중단된, 농촌의 현실을 그린 채만식의 작품이다.
부전딱지 소설 카페 스타, 기꾸에의 음독자살 이야기를 담은 소설작품이다.
부촌 희곡 채만식의 감성을 담은 감정적인 풍자적 희곡 작품이다.
불효자식 소설 192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부모의 기대와 자식의 불효 내용을 바탕으로 한 소설 작품이다.
소설 유모로 돈을 버는 아내와 집에서 앓는 아기이야기를 담은 소설작품이다.
사라지는 그림자 희곡 1931년 농촌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희곡작품이다.
산동이 소설 만주로 떠난 산동이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작품이다.
상경반절기 소설 상경하여 일어나는 채만식의 소설작품이다.
생명 소설
생명의 유희 소설
선량하고 싶던 날 소설
세 길로 소설
소년은 자란다 소설
소망 소설
순공있는 일요일 소설
스님과 새장사 희곡
쑥국새 소설 1938년 7월 ≪여성 女性≫ 28호에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목가적인 농촌 풍경 속에 점철된 사랑의 갈등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새벽 소설
앙탈 소설
야생소년군 희곡
어머니를 찾아서 소설
언약 소설
얼어죽은 모나리자 소설
여인전기 소설
역로 소설
염마 소설 1934년 5월 16일부터 11월 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탐정 소설이다.
영웅모집 희곡
예수만 안 믿었드면 희곡
옥랑사 소설
왕치와 소새와 개미 소설
용동댁 소설
원두막의 밤 이야기 소설
이런 남매 소설
이런 처지 소설
이상한 선생님 소설
인테리와 빈대떡 희곡
인형의 집을 나와서 소설
잘난 사람들 소설
젊은 날의 한 구절 소설
젊은 마음 소설
정자나무 있는 삽화 소설
제향날 희곡
조그마한 기업가 희곡
조조 희곡
쥐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나섰다 소설
차중에서 소설
창백한 얼굴들 소설
처자 소설
총기 좋은 할머니 소설
치숙 소설
코메인 지사 희곡
탁류 소설
태평천하 소설
팔려간 몸 소설
패배자의 무덤 소설
행랑들창에서 들리는 소리 희곡
화물 자동차 소설
소설
흥보씨 소설 1939년 10 『인문평론』에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소설이다.

문학사적 가치

채만식의 작품의 특징들을 살펴보자면, 풍자적인 글을 자주 쓴다는 것이다. 채만식의 거의 모든 작품은 대부분 자신이 산 시대의 민족적, 사회적 모순을 파헤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부정면을 통해 기실 긍정면을 주장하겠다”는 창작 자세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채만식의 작품의 뛰어난 점은 치열한 현실비판 정신과 탁월한 형상화 능력에 있다. 풍자와 반어, 역설과 판소리 투 등 사설 체 등을 사용하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 구성 방식을 도입하는 글을 쓰는 등 일제 식민지의 가혹하고 힘든 검열을 피하면서도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표현 방식을 꾸준히 추구하여, 능청 적이면서도 신랄한 비판이 가능한 특유의 문체를 이룩했다. 채만식의 대표작들이라고 불리는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탁류」, 「태평천하」 등은 바로 이러한 점이 가장 잘 담긴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는 세계적인 경제 공황기에 실직중인 ‘P’라는 인물에게 당시 한국 지식인의 운명과 그 곤경을 대입 시킴으로써 당시 지식인의 생태와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탁류’는 1937~193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930년대 당시 시대상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초봉이’라는 인물에게 당시 사람들을 대입함으로써 모함과 사기, 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당시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었다.

태평천하’는 이전에 사회상을 풍자하던 것과는 다르게, 대놓고 당시의 양반, 즉 게급적 체계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는 작품인데, ‘몰락’을 주로 다루는 이 작품에선 기존 ‘탁류’와는 다르게 여기서 말하는 ‘몰락’은 지주 계급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 민중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의 관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상당한 연구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으로 다양한 풍자와 비판을 보여준 ‘채만식’은 친일을 했다는 오점을 제외하고는 현대 문학계에 긍정적인 영향과 120여편의 소설 및 희곡과 50여편의 평론,수필을 남기며 일제 강점기는 물론, 근 현대 문학기 전체에서도 가장 빼어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RDF 및 네트워크 그래프

RDF

주어(S) 목적어(O) 관계:S는(은) O를(을, 이, 가) ~하다(이다)(P) 설명
채만식의 RDF
채만식 혜성(잡지) 편집했다. S는 O를 편집했다.
채만식 별건곤 편집했다. S는 O를 편집했다.
채만식 동아일보사 근무했다. S는 O에서 근무했다.
채만식 태평천하(1938) 창작했다. S는 O를 창조했다.
채만식 제일선 편집했다. S는 O를 편집했다.
채만식 치숙(1938)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제향날(1937)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탁류(1937~1938)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조선일보사 근무했다. S는 O에서 근무했다.
채만식 임피초등학교 졸업했다. S는 O를 졸업했다.
채만식 순국영령방문행사 참가했다. S는 O에 참가했다.
채만식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했다. S는 O를 졸업했다.
채만식 개벽사 근무했다. S는 O에서 근무했다.
채만식 와세다 대학교 중퇴했다. S는 O를 중퇴했다.
채만식 세길로(1924)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논 이야기(1946)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민족의 죄인(1949)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미스터 방(1946)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이상한 선생님(1945)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보도특별정신회 참가했다. S는 O에 참가했다.
채만식 생산지 증산 위문 파견 참가했다. S는 O에 참가했다.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1934) 창작했다. S는 O를 창작했다.
채만식 예술 부문 관계자 연성회 참가했다. S는 O에 참가했다.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자 및 기여자

정조

홍석준

최서윤

권회형

안민주

출처 및 각주

  1. “채만식(蔡萬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05.29.,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5587.
  2. 이덕화, 「채만식의 문학의식과 글쓰기 = The Literature Thougut and Writing of Chae Man Sik」, 『論文集(PYONGTAEK REVIEW)』, Vol.- No.-, 평택대학교(PYONGTAEK UNIVERSITY), 2002, 563-576쪽.
  3. “채만식”, <NAVER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22.04.1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2837&cid=46645&categoryId=46645.
  4. 이덕화, 「채만식의 문학의식과 글쓰기 = The Literature Thougut and Writing of Chae Man Sik」, 『論文集(PYONGTAEK REVIEW)』, Vol.- No.-, 평택대학교(PYONGTAEK UNIVERSITY), 2002, 563-576쪽.
  5. 이덕화, 「채만식의 문학의식과 글쓰기 = The Literature Thougut and Writing of Chae Man Sik」, 『論文集(PYONGTAEK REVIEW)』, Vol.- No.-, 평택대학교(PYONGTAEK UNIVERSITY), 2002, 563-576쪽.
  6. “채만식문학관(蔡萬植文學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06.04.,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0547 (2022.06.04.).
  7. "(화제) 소설가 채만식 선생 추모 사업 활발", <전준상 기자(연합뉴스)>, 1999.10.0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479694?sid=102 (2022.05.23.).

참고자료

참고문헌

  1. 이덕화, 「채만식의 문학의식과 글쓰기 = The Literature Thougut and Writing of Chae Man Sik」, 『論文集(PYONGTAEK REVIEW)』, Vol.- No.-, 평택대학교(PYONGTAEK UNIVERSITY), 2002, 563-576쪽.

참고사이트

  1. "(화제) 소설가 채만식 선생 추모 사업 활발", <전준상 기자(연합뉴스)>, 1999.10.0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479694?sid=102 (2022.05.23.).
  2. "채만식", <NAVER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22.04.1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2837&cid=46645&categoryId=46645.
  3. "채만식", <NAVER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22.05.15.,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3953&cid=41708&categoryId=41737.
  4. "채만식", <위키백과>, 2022.05.15., https://ko.wikipedia.org/wiki/%EC%B1%84%EB%A7%8C%EC%8B%9D.
  5. "채만식(蔡萬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05.1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5587.
  6. "채만식문학관(蔡萬植文學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06.04.,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0547 (2022.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