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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단)
(관련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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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잡지===
 
===관련 잡지===
====현대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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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평론]]====
 
*개요  
 
*개요  
 
  1927년에 창간되었던 평론중심의 월간 종합잡지로 1927년 1월에 창간되어 1928년 1월에 종간되었다. 이관용, 이긍종, 하준석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신문지법(新聞紙法)」에 의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그렇게 탄압을 받다가, 제10호는 압수되고 통권 제11호로 폐간되었다.  
 
  1927년에 창간되었던 평론중심의 월간 종합잡지로 1927년 1월에 창간되어 1928년 1월에 종간되었다. 이관용, 이긍종, 하준석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신문지법(新聞紙法)」에 의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그렇게 탄압을 받다가, 제10호는 압수되고 통권 제11호로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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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평론의 편집 경향은 다소 보수적이면서 민족주의적 경향을 나타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받았고 거의 매호마다 20~30면, 많게는 50면씩 삭제를 당하면서 간행되었다. 현대평론은 「출판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가 아닌「신문지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였다. 그렇기에, 정치·경제·문화 등 시사문제를 논평할 수 있었고, 실제로는 조선민중의 사정을 과학적 태도로 조사, 연구함을 목적으로 1925년 9월에 창립된 단체인 조선사정연구회의 기관지적 성격을 띤 잡지였다. 현대평론은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문예란에 이병기의 시조 「으스름 달밤」, 나도향의 소설 「벙어리 삼룡」이 실리기도 하였다. 현대평론은 비록 단명하기는 했지만 한국잡지사상 『개벽』과 더불어 2대언론잡지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평론의 편집 경향은 다소 보수적이면서 민족주의적 경향을 나타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받았고 거의 매호마다 20~30면, 많게는 50면씩 삭제를 당하면서 간행되었다. 현대평론은 「출판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가 아닌「신문지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였다. 그렇기에, 정치·경제·문화 등 시사문제를 논평할 수 있었고, 실제로는 조선민중의 사정을 과학적 태도로 조사, 연구함을 목적으로 1925년 9월에 창립된 단체인 조선사정연구회의 기관지적 성격을 띤 잡지였다. 현대평론은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문예란에 이병기의 시조 「으스름 달밤」, 나도향의 소설 「벙어리 삼룡」이 실리기도 하였다. 현대평론은 비록 단명하기는 했지만 한국잡지사상 『개벽』과 더불어 2대언론잡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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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단]]====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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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창간되었던 순문예지로 1924년 10월에 창간되어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되었다. 1~4호까지는 이광수가 주재하였고, 1~17호까지 방인근에 의하여 편집 겸 발행되다가 휴간되었으며 1927년 1월 18호부터 남진우에 의하여 속간되었으나 다시 휴간되었다. 그리고 1935년 2월 통권 21호가 다시 속간 1호로 발간되어 다시 26호까지 발행되었다.  
 
1924년에 창간되었던 순문예지로 1924년 10월에 창간되어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되었다. 1~4호까지는 이광수가 주재하였고, 1~17호까지 방인근에 의하여 편집 겸 발행되다가 휴간되었으며 1927년 1월 18호부터 남진우에 의하여 속간되었으나 다시 휴간되었다. 그리고 1935년 2월 통권 21호가 다시 속간 1호로 발간되어 다시 26호까지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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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근의 사재로 시작되었고 처음부터 우리 민족문학 옹호를 표방하였다. 자연주의 문학을 성장시켰고, 민족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으며 당시 한국문학을 휩쓸던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을 배격하였다. 이 잡지의 추천제에 의해 작가가 된 사람은 최학송, 채만식, 한병도, 박화성 등이 있고, 주요 활동 문인은 이광수, 방인근, 염상섭, 김익, 주요한, 김동인 등이 있다.
 
방인근의 사재로 시작되었고 처음부터 우리 민족문학 옹호를 표방하였다. 자연주의 문학을 성장시켰고, 민족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으며 당시 한국문학을 휩쓸던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을 배격하였다. 이 잡지의 추천제에 의해 작가가 된 사람은 최학송, 채만식, 한병도, 박화성 등이 있고, 주요 활동 문인은 이광수, 방인근, 염상섭, 김익, 주요한, 김동인 등이 있다.
  
====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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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개요
 
*개요
 
  1927년 1월 10일 장한사에서 경성의 권번 기생들이 대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하여 창간한 대중잡지이다.
 
  1927년 1월 10일 장한사에서 경성의 권번 기생들이 대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하여 창간한 대중잡지이다.

2022년 6월 7일 (화) 14:14 판


생애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에서 출생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성진보통학교에서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 교육은 받지 못했다.

1918년 고향을 떠나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했다.

1923년 간도를 나와 국경지방인 회령에서 잡역부 일을 하기도 했다.

1924년 작가로 출세할 결심을 한 뒤, 노모와 처자를 남겨둔 채 홀로 상경하여 이광수를 찾았다. 그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두어 달 있다가 다시 상경하여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였다.

1927년 현대평론사의 기자로 일하기도 하였고, 기생들의 잡지인『장한 長恨』을 편집하기도 했다.

1929년 중외일보 기자, 1931년 매일신보 학예부장으로 일하다 사망했다.

연보

연도(연령) 약력
1901년 (1세) 1월 21일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15년 (15세) 시장 거리에 나가 『청춘』, 『학지광』 등의 잡지를 탐독하다가, 춘원의 글을 읽고 그를 존경하여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을 맺었다.
1918년 (18세) 간도로 이주하여 유랑 생활 시작했고, 부두 노동자, 음식점 점원 등 최말단 생활로 전전했다.
1923년 (23세) 간도로부터 귀국,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다. 이 무렵부터 서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24년 (24세) 춘원의 소개로 경기도 양주군 봉선사에 들어가 약 3개월간 기거하며 서구 문학을 공부했다.
1925년 (25세) 『조선문단』사 입사하여, 작품 발표가 많아지면서 중견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김기진의 권유로 KAPF에 가입했다.
1926년 (26세) 창작집 『혈흔』을 글벗집에서 발간, 『조선문단』이 휴간되자 『현대평론』 담당 기자로 당분간 종사했다.
1927년 (27세) 『조선문단』사에 복직했으나 얼마 있다 실직 후 기생들의 잡지 『장한』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1928년 (28세) 『중외일보』 기자로 종사했다.
1929년 (29세) 『신생』의 문예 추천 작가로 위촉, KAPF 탈퇴, 가을에 『매일신보』기자가 되었다.
1930년 (30세) 『매일신보』 학예부장 취임했다.
1931년 (31세) 5월 창작집 『홍염』을 『삼천리』사에서 간행했다.
1932년 (32세) 위문 협착증으로 수술받다 과다출혈이 문제가 되어 숨을 거두었다.

작품

발표연월일 장르 구분 작품명 발표지 참고 사항
1918,3.3 독후감 『『개척자』를 독하고 소감대로』 『매일신보』
1918.3. 수필 『우후정원의 월광』 『학자광』 15호 발표 당시는 산문시로 발표
1918.3. 수필 『추교의 모색』 『학자광』 15호
1918.3. 수필 『반도청년에게』 『학자광』 15호
1918.6. 산문 『춘효설경』 『청춘』 14호 독자 문예 가작, 제목만 표시
1923.6.9 시조 『춘교에서』 『동아일보』 『춘교』라고도 함
1923.7.29 수필 『고적』 『동아일보』
1923.9. 『자신』 『북선일일신문』 내용 미상, 서해란 호를 사용
1923.9. 동화 『누구의 편지』 『신생명』
1923.12. 동화 『평화와 임금』 『신생명』
1924.1.23~2.4 단편 토혈 『동아일보』 처녀작
1924.10. 단편 고국 『조선문단』 1호 추천 소설, 1924. 2 작. 데뷔작
1924.10. 수필 『여정에서』 『조선문단』 선외 가작, 제목만 표시
1924.11. 단편 『매월』 창작집『혈흔』에 수록
1924.12. 평론 『근대로서아문학개관』 『조선문단』 생전장강 외 『근대문예 12강』 축역
1925.1. 평론 『근대영미문학개관』 『조선문단』 4호 『근대문예 12강』 축역
1925.2. 단편 『십삼원』 『조선문단』 5호
1925.2. 평론 『근대독일문학개관』 『조선문단』 5호 『근대문예 12강』 축역
1925.3.25 『시골소년이 부른 노래』 『동아일보』
1925.3. 단편 탈출기 『조선문단』 6호 1924. 10월호에는 선외가작으로 제목만 실림. 『사상계』30호(1956.1) 재수록
1925.3. 수필 『그리운 어린 때』 『조선문단』 6호 처녀작 발표 당시의 감상
1925.4.6~13 단편 『향수』 『동아일보』
1925.4. 단편 『살려는 사람들』 『조선문단』 7호 게재금지. 서문만 실렸다.
1925.4. 일기 『?! ?! ?!』 『조선문단』 7호 일기와 수감
1925.5. 단편 박돌의 죽음 『조선문단』 1925.3 하순 작
1925.6.29 단편 『방황』 『시대일보』 소품
1925.6.30~7.1 단편 『보석반지』 『시대일보』
1925.6. 단편 기아와 살육 『조선문단』 1925. 5. 17 작
1925.7.8 시조 『우음』 『동아일보』 1925. 5. 25 탈고
1925.7. 수필 『전생명의 요구는 아니다』 『조선문단』 10호 제가의 연애관
1925.8. 수필 『여름과 물』 『조선문단』 12호
1925.9. 단편 『기아』 『여명』 1925.7 작
1925.10. 수필 『해운대』 『신민』
1925.11. 수필 『병우조운』 『조선문단』
1925.11. 수필 『혈흔』 『조선문단』 창작집『혈흔』의 서문
1925.12. 단편 큰물 진 뒤 『개벽』
1925.12. 『세 처녀』 『문명』 1호 산문시
1926.1.1~5 단편 『오원칠십오전』 『동아일보』 1925.12.24 작
1926.1. 단편 『폭군』 『개벽』
1926.1. 단편 『그 찰나』 『시대일보』 미완
1926.1. 단편 『설날밤』 『신민』 9호 1925.11 작
1926.1. 평론 『감과 배』 『가면』
1926.2. 단편 『백금』 『신민』 10호 1925.12.2 자시 작
1926.2. 단편 『의사』 『문예운동』 1925.11.24 조 작
1926.3. 단편 『소살』 『가면』
1926.3. 단편 해돋이 『신민』 11호 1924.11. 15 작
1926.4. 수필 『흐르는 이의 군소리』 『조선문단』
1926.5. 단편 『그믐밤』 『신민』 13호 『자유문학』 19호(1958.10) 재수록
1926.5. 단편 『담요』 『조선문단』 『사해공론』(1935.5)에 소설로 재수록
1926.6.2 수필 『연주창과 독사』 『동아일보』
1926.6. 단편 『금붕어』 『조선문단』 17호
1926.7.10~13 수필 『신음성』 『동아일보』
1926.7.12 단편 『만두』 『시대일보』 『실생활』(1931.9.10)에 재수록
1926.7. 단편 『누가 망하나』 『신민』 15호 6.29 작
1926.7. 수필 『운과 인생』 『가면』
1926.8.7~17 평론 『칠팔월의 소설』 『동아일보』 4회 연재
1926.8. 단편 『농촌야화』 『동광』 4호 게재 금지
1926.8. 수필 『쌍포유기』 『신민』 16호
1926.9. 단편 『팔개월』 『동광』 5호 7.20 오전 4시 작
1926.9. 단편 『아내의 자는 얼굴』 『조선지광』
1926.10. 단편 『지류』 『신민』 18호 6.23 작
1926.11.14 단편 『홍한녹수』 『매일신보』 연작 소설, 소제목『남은 꿈』
1926.11. 단편 『이역원혼』 『동광』 7호 10.3 오전 2시 작
1926.11. 단편 『동대문』 『문예시대』 1호 10.8 정오 작
1926.11. 수필 『천재와 범재』 『문예시대』 1호
1926.12.28 창작집 『혈흔』 『글벗집』 수록 작품:『혈흔』(서문), 『보석반지』,『박돌의 죽음』, 『기아』,
『매월』, 『탈출기』, 『향수』, 『기아와 살육』,『미치광이』,『고국』,『십삼원』 11편
1926.12. 단편 『무서운 인상』 『동광』 8호 11.3 오 작
1926.12. 단편 『돌아가는 날』 『신사회』
1926.12. 단편 『미치광이』 창작집 『혈흔』에 수록
1927.1.1 단편 『쥐 죽인 뒤』 『매일신보』
1927.1.11~15 단편 『서막』 『동아일보』
1927.1. 단편 홍염 『조선문단』 1926.12.4 오전 6시 작
1927.1. 단편 『전야사』 『동광』 9호
1927.1.1 단편 『낙백불우』 『문예시대』
1927.1. 수필 『미덥지 못한 마음』 『조선문단』
1927.1. 수필 『잡담』 『문예시대』
1927.1. 앙케이트 『우리의 감정에서 울어나는 글을』  ?
1927.1. 앙케이트 『문단 침체의 원인과 그 대책』 『조선문단』
1927.2. 단편 『가난한 아내』 『조선지광』 미완
1927.2. 대담 『문사방문기』 『조선문단』
1927.5. 단편 『이중』 『시대평론』 게재 금지
1927.7. 평론 『문단시감』 『현대평론』 1933.7.6『매일신보』에 재수록
1927.8. 수필 『여름과 나』 『동광』
1927.8. 잡문 『도향에게』 『현대평론』
1927.9. 평론 『문예시감』 『현대평론』
1927.11. 평론 『조선문학 개척자』 『중외일보』 부제 『국초 이인직씨와 그 작품』
1927.12. 평론 『데카단의 상징』 『별건곤』 10호
1928.1.8~11 평론 『문예시감』 『조선일보』 3회 연재
1928.1. 단편 『갈등』 『신민』
1928.1. 앙케이트 『조선을 안 뒤라야』 『조선지광』
1928.2. 앙케이트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여자』 『별건곤』 특집『옛날의 그이』
1928.4.4~12 단편 『폭풍우시대』 『동아일보』 미완
1928.4.22 수필 『성동도』 『조선일보』
1928.4. 평론 『소년소녀와 영화극문제』 『신민』
1928.5.16~8.30 번안 『사랑의 원수』 『중외일보』 연재 80회, 탐정소설
1928.7.10 수필 『근감』 『동아일보』
1928.8.2 평론 『제재 선택의 필요』 『중외일보』
1928.8. 단편 『용신난』(1) 『신민』 미완
1928.9.23 수필 『값없는 생명』 『조선일보』 혜음(1)
1928.9.25~26 수필 『면회사절』 『조선일보』 혜음(2)(3)
1928.9.27 수필 『수박』 『조선일보』 혜음(4)
1928.9.28 수필 『파약의 비애』 『조선일보』 혜음(5)(6)(7)
1928.9. 평론 『신소설 초기와 이인직』 『한빛』 동권 7호 일제 검열로 미발간
1928.10.6~21 단편 『부부』 『매일신보』 8월 작
1928.12. 앙케이트 『하루 시간을 어떻게 쓰나』 『별건곤』 각 방면 명사의 일인 생활
1929.1.1~2.26 단편 『먼동이 틀 때』 『조선일보』
1929.1. 번역 『행복』 『신민』 45호 알치 바세푸 원작. 중도청 일역. 서해 중역
1929.1. 단편 『전기』 『신생』 4호 1928.12.14 작
1929.1. 앙케이트 『결국은 빵 문제』 『별건곤』 18호
1929.1. 앙케이트 『나의 소설은 보기 어렵다고』 『별건곤』 18호
1929.2. 단편 『인정』 『신생』 5호 1월 작
1929.3. 단편 『물벼락』 『조선일보』 4호 꽁트
1929.3. 단편 『경계선』 『중성』
1929.3. 수필 『육가락 방판관』 『학생』
1929.3. 수필 『매화 옛등걸』 『중외일보』
1929.3. 수필 『봄! 봄! 봄!』 『신생』 6호
1929.4.15~22 단편 『차중에 나타난 마지막 그림자』 『조선일보』
1929.4. 단편 『주인아씨』 『신생』
1929.4. 단편 『수난』 『학생』 미완~문단 삼최씨 연작소설(대제목, 무제)
1929.4. 수필 『병신의 넋두리』 『조선농민』
1929.5.24 단편 『여름음악가』 『동아일보』 연작소설
1929.6. 수필 『봄을 맞는다』 『학생』 2호
1929.6. 수필 『달리소』 『신생』 9호
1929.6. 앙케이트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삼천리』 1호
1929.7.2~3 평론 『문예와 시대』 『동아일보』 열일고어(1)(2)
1929.7.4 평론 『내용과 기교』 『동아일보』 열일고어(3)
1929.7.5~10 평론 『노농대중과 문예운동』 『동아일보』 열일고어(4)(5)(6)(7)(8)
1929.7.12~14 평론 『조선의 특수성』 『동아일보』 열일고어(9)(10)
1929.7. 평론 『새해을 마치면서- 내가 생각하는 조선문단 진흥책』 『별건곤』
1929.8.21~24 수필 『가을을 맞으며』 『동아일보』
1929.8.25~26 수필 『숙연한 우성』 『동아일보』
1929.8.29~9.1 수필 『가을의 마음』 『동아일보』
1929.8. 수필 『어느 곳 풍경』 『학생』 5호
1929.9. 단편 『같은 길을 밟는 사람들』 『신소설』 1호
1929.9. 수필 『이중명추』 『학생』
1929.10. 동화 『토끼와 포도』 『신생』 번역, 마태로 원작
1929.11. 수필 『아내의 불행과 이혼 문제』 『삼천리』 3호
1929.12. 단편 『무명초』 『신민』 52호
1930.2. 단편 『누이동생을 따라』 『신민』
1930.2. 잡문 『굶어본 이야기』 『별건곤』
1930.3. 수필 『입춘을 맞으며』 『별건곤』 27호
1930.5.15 창작집 『홍염』 『삼천리』 수록작품:『갈등』, 『저류』, 『홍염』 3편
1930.5. 앙케이트 『내가 본 나(명사의 자아관)』 『별건곤』
1930.5. 잡문 『홍염』과 『탈출기』 『삼천리』
1930.5. 잡문 『아호의 유래』 『삼천리』 6호
1930.6. 수필 『신부와 나』 『별건곤』 29호
1930.7. 평론 『작가가 본 평론가』 『삼천리』 7호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
1930.8.19~22 탐방기사 『모범 농촌 순례』 『매일신보』
1930.9.14 잡문 『호외시대』 예고 『매일신보』
1930.9.20~ 1931.8.1 장편 『호외시대』 『매일신보』 310회 연재
1930.9. 수필 『의문의 그 여자』 『신소설』 5호
1930.10. 수필 『탈』 『신생』 24호
1930.10. 잡문 『고시조 한 장을』 『삼천리』 9호
1930.11. 소품 『산사람의 마음 위로』 『별건곤』
1931.1. 잡문 『내가 감격한 외국 작품-골키의 3인』 『삼천리』
1931.2. 잡문 『내가 본 내 얼굴』 『별건곤』
1931.11. 수필 『깊어가는 가을』 『신생』
1932.4. 수필 『K화상의 눈』 『동방평론』
1932.5. 수필 『그늘에 핀 꽃을』 『삼천리』
1932.12. 수필 『반역의 여성』 『삼천리』
1934.9. 『님 찾아서』 『월간 매신』 유고

작품 특징과 배경

특징

주인공이 모두 하층민으로 모순된 환경에 대해 저항하며, 극빈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은 궁핍에 허덕여 처참한 생활 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원망 및 저주하며 반역하고 투쟁을 결심하고 실제로 투쟁을 하기도 한다.

피: 참담한 상황에서 토하거나 뿌려지는 피는 소설 전반을 지배. 공포, 잔인, 원한, 저주의 의미를 내포한다.

죽음: 전기 작품에서는 본인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부각시켜 하층민의 궁핌한 상황과 빈곤한 삶을 나타낸다. 후기 작품에서는 타인을 인지하고 인간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층민의 개인적 차원의 강렬한 죽음에서 지식인의 객관적이고 보편적 죽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주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의 사실성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품의 주로 등장하는 가출 모티브, 환상 장면, 액자 소설에 나타나는 관점 등이 있다.

배경

1910~1918년 대규모 토지조사사업을 일제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경제 수탈을 시작했다. 이때 전 국토의 40%를 일본이 차지하게 되며 땅이 없어진 농민들이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이 되어 착취를 당했다. 1920~1934년 일본의 식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이 이루어졌고, 이후 농민들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허덕였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삶이 고단했던 일부 사람들은 간도나 만주, 연해주로 돈벌이를 위해 이주하였다.

작품 경향 및 문학사적 가치

신경향파 문학

192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주의 경향의 문학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20년대 초의 감상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백조파와 창조파 문학 따위를 비판하며 전개된 문학 사조로, 3.1운동 직후의 병약한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192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사회주의적인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출발했다. 신경향파의 특징은 빈곤한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위 빈궁문학으로,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plot)으로 한 하층민들의 반항적 요소가 강하고, 결말은 살인과 방화 등으로 끝난다. 삶에 대한 최후의 선택으로 결말을 맺지만 그 심층에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반어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계급주의 문학

계급 문학 = 프롤레타리아 문학 :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한 문학
사회주의의 이념을 선전하거나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을 형상화한 문학이다. 이것은 17, 18세기 서구 리얼리즘 문학의 현실인식 방법과 19세기 혁명적 민주주의 문학의 유산을 계승하여 리얼리즘 문학계열의 한 축을 형성하였고 193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으로 정착하였다. 동시에 계급주의 문학은 인간을 계급적인 존재로서 발견하고, 계급지배 체제로의 변혁에 순응하는 새로운 혁명적 인간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제까지의 개인주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상황과 인간성과의 새로운 긴장과 전개, 새로운 시야와 감수성과 사고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사상 종래에 없던 사회주의 문예사조와 그 작가 및 작품을 등장시켰다.

관련 항목

관련 인물

이광수

1924년 초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최서해는 무작정 춘원 이광수의 집 대문을 두드려 찾아갔다. 이광수는 그의 옷을 갈아 입히고 여벌 옷까지 주어 봉선사로 보냈다. 하지만 봉선사에서의 생활을 길지 못했다. 최서해는 3개월 동안 승려로 지내며 일문으로 된 서구 문학을 번역하였다. 그 후, 이광수는 다시 방인근을 소개해 주어 그가 내는 '조선문단'의 기자가 되었다. 1924~1925년 사이에 발표했던 그의 출세작 대부분을 지면 걱정 없이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이 이것이다.

관련 단체

카프

  • 개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통칭 카프(에스페란토: KAPF 코아뽀포)는 1925년 8월에 결성된 사회주의 문학단체이다. 계급 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운동을 목적으로 삼았다. 대표작가로는 최서해,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이 있다.
  • 역사
카프는 1926년 1월에 준기관지 <문예운동>을 발간하고, 그 성격과 활동을 표면화시킨 뒤 1927년 일본 도쿄에서 기관지 <예술운동>을 발간하는 한편, 그해 9월 1백여 문인이 참가한 전국 맹원총회를 열어 일체의 전제세력과 항쟁한다. "우리는 예술을 무기로 하여 조선민족의 계급적 해방을 목적으로 한다." 강령을 채택하고 박영희를 회장으로 뽑아 대규모의 문학운동을 벌여 나갔다. 프로문학 운동의 초기, 카프는 민족주의적 문학, 즉 그들쪽에서 볼 때 부르조아문학과의 격렬한 논쟁을 벌임으로써, 양대 이데올로기가 대립한 문학의 논쟁시대를 연출하였다. 이 집단의 활동은 1920년대에 대두하기 시작한 무산계급 및 사회운동 등이 일어난 시대적 이점을 갖고 있었으나, 결과에 있어서는 이렇다할 만한 문학운동으로서의 업적이나 작품을 남기지 못한 채, 이론과 논쟁으로만 일관하다가 일제의 탄압에 굴복했다.
  • 작품과 작가
1929년 문학의 대중화가 강조된 후 1932년까지는 프로문학의 볼셰비키화 과정을 통해 작품활동이 크게 강조된 시기였다. 1929년을 전후해서 발표된 작품으로는 최서해의 《먼동이 틀 때》, 한설야의 《과도기》(過渡期), 이기영의 《고향》(故鄕, 1933), 《서화》(鼠火), 《홍수》(洪水) 등이 당시의 평판을 받은 작품들이다. 한편 시인으로서는 유완희·김창술·홍양명(洪陽明)·임화·박팔양 등이 활동했고, 프로 시로서 평판을 받은 것은 1929년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가 있을 정도이다. 유완희의 《우리들의 시》(1930), 이북명(李北鳴)의 《질소비료공장》(窒素肥料工場, 1933) 등도 전형적인 프로문학작품이었다. 그러나 1934년 프로문학의 지도적 이론가였던 박영희가 "얻은 것은 이데롤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었다"고 자기비판의 결론을 내렸던 것처럼, 당시 프로문학은 대부분 도식적(圖式的)인 목적의식의 선행으로 작가의 창조성을 위축시킨 결과 참다운 작품의 생산이 이룩될 수 없었다.

관련 잡지

현대평론

  • 개요
1927년에 창간되었던 평론중심의 월간 종합잡지로 1927년 1월에 창간되어 1928년 1월에 종간되었다. 이관용, 이긍종, 하준석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신문지법(新聞紙法)」에 의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그렇게 탄압을 받다가, 제10호는 압수되고 통권 제11호로 폐간되었다. 
  • 내용
현대평론의 편집 경향은 다소 보수적이면서 민족주의적 경향을 나타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받았고 거의 매호마다 20~30면, 많게는 50면씩 삭제를 당하면서 간행되었다. 현대평론은 「출판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가 아닌「신문지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였다. 그렇기에, 정치·경제·문화 등 시사문제를 논평할 수 있었고, 실제로는 조선민중의 사정을 과학적 태도로 조사, 연구함을 목적으로 1925년 9월에 창립된 단체인 조선사정연구회의 기관지적 성격을 띤 잡지였다. 현대평론은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문예란에 이병기의 시조 「으스름 달밤」, 나도향의 소설 「벙어리 삼룡」이 실리기도 하였다. 현대평론은 비록 단명하기는 했지만 한국잡지사상 『개벽』과 더불어 2대언론잡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문단

  • 개요

1924년에 창간되었던 순문예지로 1924년 10월에 창간되어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되었다. 1~4호까지는 이광수가 주재하였고, 1~17호까지 방인근에 의하여 편집 겸 발행되다가 휴간되었으며 1927년 1월 18호부터 남진우에 의하여 속간되었으나 다시 휴간되었다. 그리고 1935년 2월 통권 21호가 다시 속간 1호로 발간되어 다시 26호까지 발행되었다.

  • 내용

방인근의 사재로 시작되었고 처음부터 우리 민족문학 옹호를 표방하였다. 자연주의 문학을 성장시켰고, 민족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으며 당시 한국문학을 휩쓸던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을 배격하였다. 이 잡지의 추천제에 의해 작가가 된 사람은 최학송, 채만식, 한병도, 박화성 등이 있고, 주요 활동 문인은 이광수, 방인근, 염상섭, 김익, 주요한, 김동인 등이 있다.

장한

  • 개요
1927년 1월 10일 장한사에서 경성의 권번 기생들이 대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하여 창간한 대중잡지이다.
  • 내용
『장한』은 기생 신세의 한탄부터 기생제도의 철폐, 사회비판에 대한 의견, 의학상식, 기생이 갖추어야 할 소양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기생의 예술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시조, 소설, 중국 고전, 이태리 가극도 실었다. 문화의 향상과 풍속의 개선을 위해 기여하자는 의견도 있고, 사회변혁을 위해 계급 모순과 차별 타파를 결의하는 내용도 있다. 1호에는 총 48개의 글이 실렸는데, 기생의 글이 26편이다. 이중 17편이 논설류이고, 나머지는 수필, 수기, 문예물, 동화이다. 외부 필진의 논설류와 야화, 콩트, 촌평, 가십, 정보기사 등도 실렸다. 2호에는 총 40편 중에 기생의 글이 26편이고, 이중 논설류가 11편이다. 나머지는 외부 필진의 논설, 시사평, 수필, 우화, 야담, 꽁트, 정보기사, 영화소설, 번역시들이다. 2호는 1호의 선언적 발언에 비해 일상 속으로 천착한 글들이 많고, 교양과 오락물이 좀 더 강화되었다.

관련 장소

간도

간도


  • 설명
만주 길림성 동남부 지역으로 중국 현지에서 연길도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간도라는 지명은 병자호란 뒤에 청나라 측이 이 지역을 봉금지역으로 정하고 청국인이나 조선인 모두의 입주를 불허하는 공간 지대로 삼은 뒤,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서해는 청년 시절 간도로 이주, 말단 노동자로 일하며 이 지역을 유랑하였고, 당시의 가난한 노동자로서의 경험은 「고국」, 「탈출기」, 「홍염」 등의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회령

봉선사



네트워크 그래프 및 RDF

네트워크 그래프

RDF

주어(S) 목적어(O) 관계:A는 B를 ~하다(P)
최서해 홍염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기아와 살육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토혈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고국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박돌의 죽음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탈출기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큰물 진 뒤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해돋이 A는 B를 집필했다.
최서해 회령 A는 B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최서해 봉선사 A는 B에서 생활을 했다.
최서해 간도 A는 B로 이주했다.
최서해 장한 A는 B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최서해 중외일보 A는 B에서 일했다.
최서해 현대평론 A는 B에서 일했다.
최서해 조선문단 A는 B에서 일했다.
최서해 이광수 A는 B의 도움을 받았다.
최서해 신경향파 A는 B의 성향을 보였다.
최서해 리얼리즘 A는 B의 성향을 보였다.
최서해 프롤레타리아 A는 B 문학의 성향을 가진 작품을 집필했다.
최서해 이산문학 A는 B의 성향을 보이는 작품을 집필했다.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