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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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2018년 6월 20일 (수) 15:18 판
정의
연극, 영화, 뮤지컬, 드라마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사람을 뜻한다.
상세
사실상 연극의 대본은 희곡, 영화의 대본은 시나리오, 드라마의 대본은 각본이라고 칭하는 등 정식 명칭이 따로 있으며, 한국극작가협회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라고 칭한다. 각본가나 시나리오 작가와 가장 큰 차이점은 극작가가 연극의 연출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의 각본가는 희곡 작가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취급을 받는다. 윤대성의 극작의 실제에서 희곡과 각본 두 장르를 다 써본 윤대성은 이렇게 말했다.
…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연유로 희곡작가와 각본가의 취급도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극본, 각본, 희곡을 다 집필하는 작가도 많지만 극작가 문서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로 취급하여 서술한다.
국내 극작가
- 이름 옆의 *은 현재 고인이 되신 분들을 뜻함.
- 김광림 - 현재 한국예술대학교의 연극원 원장으로 있으며, 대표작으로는「아침에는 늘 혼자예요」가 있다.
- 이만희 - 현재 대학로와 충무로를 오가며 스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희곡에서는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인천상륙작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 오영진* - 민족주의적이고 반일·반공주의적인 작품을 써낸 것이 유명하다. 대표작으로「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가 있다.
- 이근삼* - 한국전쟁과 4.19 혁명까지 겪으면서 당대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가 있다.
- 김상열* -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긴 작품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있다.
- 유치진* - 노경식, 윤대성 등이 다닌 드라마센터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 이후에도 한국극작가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는 등 극작가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작으로는「토막」,「한강은 흐른다」등이 있다.
- 황철* - 광복 후 낙랑극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연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친일행위와 복잡한 여자 관계는 후에 그의 평가를 깎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있다.
- 김수미 - 현재 한국극작가협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관련 기관
참고 문헌
윤대성,『극작과 실제』, 예니, 1999.02.13.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유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