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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문화재 여행 | 대구 문화재 여행 | ||
− | *2016년부터 2021년까지 | + | *현재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개최한 대구문화재 야행은 대구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를 탐방하고 체험하는 축제이다. |
− | *대구문화재 야행은 금, 토요일 청라언덕부터 약령시 | + | *대구문화재 야행은 금, 토요일 청라언덕부터 약령시 일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
− | *이상화 서상돈 고택 탐방 및 공연, 뮤지컬 시간여행, 콘서트, 이상화 시 캘라그라피 공모전 등 대구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 + | *이상화 서상돈 고택 탐방 및 공연, 뮤지컬 시간여행, 콘서트, 이상화 시 캘라그라피 공모전 등 대구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
*[http://heritage-night.jung.daegu.kr/ 대구문화재 야행] | *[http://heritage-night.jung.daegu.kr/ 대구문화재 야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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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tcenter.daegu.go.kr/content.html?md=0019&seq=52927&vmode=view 대구문화예술회관] | [https://artcenter.daegu.go.kr/content.html?md=0019&seq=52927&vmode=view 대구문화예술회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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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공연=== |
2022년 6월 4일 (토) 17:53 판
목차
프로필
이상화 | |
---|---|
이름 | 이상화 |
한자 | 李相和 |
생몰년 | 1901~1943 |
출생지 | 대구 |
직업 | 시인, 작가 |
학력 | 일본 도쿄 외국어학교 불어학과 중퇴 |
활동분야 | 현대문학 |
관련단체 | 백조, 파스큘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
생애
1900~1910년대
년도 | 내용 |
---|---|
1901년 5월 22일 |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부친 이시우(李時雨), 모친 김신자(金愼子)의 차남으로 출생 |
1923년 3월 | 부친 이시우 사망, 상정 12세, 상화 8세, 상백 6세, 상오 4세 |
1914년 | 한문수학을 마친 후 1년간 신학문(일어, 산술, 박물 등 초등학교 과정)을 배움 |
1915년 | 서울 계동 32번지에서 하숙하면서 정규교육기관인 경성 중앙학교 입학 |
1917년 | 경성 중앙학교 3년 수료, 7월 강원도 일대 방랑 |
1919년 | 백기만 등과 대구 3 · 1운동거사 당시 학생운동 배후조종, 선전문 등 사 · 배포 등으로 활동함. 사전에 주요 인물이 검속되어 서울 서대문구 냉동 92번지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 10월 공주 출신 서순애(徐順愛)와 혼인 |
1920년대
년도 | 내용 |
---|---|
1922년 |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동인이 되어 나도향, 홍사용, 박종화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창간호에 시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 도일하여 동경에 있는 외국어전문학교인 '아테네 프랑세' 입학 |
1923년 3월 | '아테네 프랑세' 수료, 「나의 침실로」(«백조» 3호) 발표,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학살에 분노, 이듬해 3월 귀국.
서울 가회동 소재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작(詩作)에 전념. 고향 친구 박태원의 죽음을 두고 쓴 시 「이중의 사망」(«백조» 3호) 발표. 김기진 등과 무산계급 문예운동단체인 "파스큘라" 결성 |
1925년 | "파스큘라"가 개최한 천도교기념관에서 문예강연 및 시낭독회에 출연하여 시 '이별을 하느니' 낭독. 8월 박영희, 김기진 등과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 |
1926년 | 1926년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개벽» 70호) 발표. 카프 기관지 〈문예운동〉 주간.
「조선병」, 「겨울마음」, 「지구 흑점의 노래」, 「문예의 시대적 변위와 작가의 의식적 태도론」 등을 발표. 장남 용희(龍熙) 출생 |
1928년 |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ㄱ당사건'에 연루되어 대구경찰서에 구금(당시 상화는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직에 있었다). 상화는 이 시기에 자기 집 사랑방을 '담교장(談交莊)'이라 칭하였으며, 수많은 항일 인사들이 출입 |
1930년대
년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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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 「대구행진곡」(«별건곤(別乾坤)» 10월호) 발표 |
1932년 | 담교장이라 칭하던 서문로 집을 처분하고 대구시 중구 장관동 50번지로 이전 |
1933년 8월 | 경북지사로부터 교남학교 강사 인가(경북학비 제 449호)를 받고 근무. 담당은 조선어와 영어, 이듬해 사임. 「반딧불」, 「농촌의 집」에 이어 두 번째 창작소설 「초동(初冬)」(«신가정» 10월호) 발표 |
1934년 | 차남 충희(忠熙) 출생. 친구들의 권유로 조선일보 경북총국을 경영했으나 실패, 대구시 중구 남성로 35번지로 이주 |
1935년 | 시 「역천」(«시원» 2호), 「나는 해를 먹다」(«조강» 2호) 발표, 백부 소남 이일우 사망 |
1936년 |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행. 남경, 북경, 상해 등지를 3개월 유람한 후 귀국 |
1937년 | 귀국 후 경찰에 구금되어 20여 일 심한 고초를 겪음. 교남학교에 복직하여 교가 작사. 대구시 중구 종로2가 72번지로 이주 |
1938년 | 태희(太熙) 출생 |
1939년 6월 |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로 이사. 교남학교 교가 가사 문제로 가택 수색을 당하여 자신의 시 원고와 보관 중이던 고월 유고까지 압수당함 |
1940년대
년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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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 김소운 번역의 «조선시집»(河出書房)에 「나의 침실로」 등 3편이 수록됨 |
1941년 | 시 「서러운 해조」(«문장» 25호) 발표 |
1943년 4월 25일 |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 달성군 화원면 본리리 산 9번지 월성 이씨 가족묘지에 묻힘. 10월 백기만의 발의로 서동진·박명조 설계, 윤갑기 · 김준묵의 참여로 묘 앞에 ‘詩人白亞月城李公諱相和之墓’라는 비가 세워짐 |
작품
동인지
'말세의 희탄', '나의 침실로', '가을의 풍경' 등 수록
'뺴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상' 등 수록
평가 및 문학사적 의의
- 퇴폐적인 낭만주의와 계몽주의를 노래하다.
- 방자한 낭만과 미숙성과 사회개혁과 일제에 대한 저항과 우월감에 가득한 계몽주의와 로맨틱한 혁명사상을 노래하고, 쓰고, 외쳤던 문학사적 의의를 보여줌.[2]
- 문화적, 정신사적 전환기,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다.
- 이상화가 살다 간 1920년대는 이 땅의 봉건적 유교적 가치 질서에 기반을 둔 전통문화가 와해되고 근대적인 서구 문화가 유입되는 문화적, 정신사적 전환기임.
- 따라서 민중은 물론 지식인들에게 삶의 딜레마를 한층 가중시킨 궁핍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3·1운동의 실패로 이 땅의 지식인들은 절망과 비애 속에서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 상태에 놓임.
-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그의 작품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침울하며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 많음.
- 하지만, 이상화가 다른 시인들과 달리 민족저항 시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가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임.[3]
- 이상화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다.
- 1920년대 시단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자생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전통 철학의 토대 위에 그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였음.[4]
연구 자료
단행본
학술 논문
이상화 시의 대종교 미학.한국근대문학연구,22(1),237-274.홍승진.(2021).
이상화의 시 세계에 나타난 생명 회복 공간으로서의 ‘조선’.종교연구,81(1),177-199.유신지.(2021).
이상화 시의 시어 양상 연구.한국시학연구,(64),9-30.박순원.(2020).
이상화 시에 나타난 멜랑콜리의 양상.한국시학연구,(64),31-64.배선미.(2020).
이상화의 시에서 ‘생명(生命)’ -대정(大正)기 일본의 생명주의와 관련하여-.한국문학과 예술,30(),289-317.유병관.(2019).
이상화와 보들레르의 비교문학적 고찰 - 죽음의 문제를 중심으로.인문학연구,31(),163-205.김용민.(2019).
이상화 시에 나타난 트라우마와 죽음충동.現代文學理論硏究 0.73:127-146.박한라.(2018).
이상화 시에서 드러난 남성 화자의 자기분열: 「그의 수줍은 연인에게」와 「어느 마돈나에게」와의 비 교를 중심으로." 比較文學 0.76:5-32.김한성.(2018).
이상화 문학에 나타난 시적 상상력의 근원 연구.어문론총 74.301-329.유신지,여상임.(2017).
관련 자료
매체
이상화 기념 사업회
- 이상화 기념 사업회
- 이상화 시인의 생애, 주요 연보, 문학, 저항정신, 행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앨범
- 민족시인 이상화 시노래
- 2011년 5월에 나온 국악 크로스오버로 분류되는 '민족 시인 이상화 시 노래'앨범은 총 9곡의 이상화 시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시립국악단의 이상화 고택
- 대국시립국악단의 국악이 있는 풍경에 나온 이상화 고택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국악연주다.
다큐드라마
- 1984년 12월 20일에 KBS에서 방송된 다큐드라마 민족시인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축제
대구 문화재 여행
- 현재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개최한 대구문화재 야행은 대구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를 탐방하고 체험하는 축제이다.
- 대구문화재 야행은 금, 토요일 청라언덕부터 약령시 일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 이상화 서상돈 고택 탐방 및 공연, 뮤지컬 시간여행, 콘서트, 이상화 시 캘라그라피 공모전 등 대구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 대구문화재 야행
상화문학제
- 대구 수성구 축제로 이상화 시인의 문학과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한 축제이다.
- 연마다 주제를 지정하고 이에 맞게 문학세미나, 문화제 및 이상화시인상 시상, 백일장, 시 낭송, 이상화 시인 유적 탐사 등을 진행한다.
- 대구문화예술회관을 통해 안내를 확인할 수 있다.
공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학생 창작 뮤지컬
- 대경대학교 뮤지컬과에서는 이상화 시인의 시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창작 뮤지컬화하여 공연한 적이 있다. 안동 KBS 뉴스의 1분 18초부터 확인할 수 있다.
안동 KBS 뉴스
이상화 마당극
- 대구문화재 야행은 이상화 서상돈 고택 앞에서 이상화 시인의 야야기를 재현한 마당극을 진행하였다. 지금은 행사가 취소된 상태이다.
뮤지컬 '비 갠 하루'
- 제 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대구문화예술회관을 대구를 대표하는 항일민족시인 이상화와 그의 형수이자 국내최초 여성비행사인 권기옥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공연했다.
- 대구신문을 통해 자세한 사진을 살펴볼 수 있으며, 대구문화예술회관을 통해 2017년 8월 15일 10시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렸음을 알 수 있다.
- 대구신문
네트워크 그래프
RDF
온톨로지
문화공간
- 상화기념관•이장가문학관
민족 시인 이상화 시인을 기념하고 독립운동가 등 대구 근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경주 이씨 논복공파 이장가 인물들의 업적인 대구 계몽운동의 시작과 문화계, 학계, 항일운동 등의 문화를 기리는 공간이다.
- 이상화 고택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