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단
조선문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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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학잡지 |
발행년도 | 1924년 |
발행사 | 조선문단사 |
발행주기 | 월간 |
창간자 | 방인근 |
목차
개요
『조선문단』은 문예지로서 1924에 창간하여 1936에 종간되기까지 총 26호가 발간되었다. 두 차례의 휴간(1925.12~1926.2/ 1926.7~1926.12)과 속간(1927.1/1935.2)을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초창기 한국문단을 이끌어온 문예지다. 이광수(李光洙)가 주재하고, 방인근(方仁根)이 자금을 전담, 편집 겸 발행인이 되어 조선문단사를 차려 발행했다. |
내용
『조선문단』은 10여년에 걸쳐 통권 26호를 낼 만큼, 당시로서는 최장수한 문예지이다. 그 동안 발행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이를 대체로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방인근이 발행한 1924년 10월 창간호부터 1926년 6월호까지 통권 17호, 2기는 남진우(南進祐)가 발행한 1927년 1월호부터 그해 3월호까지 통권 3호, 3기는 이성로(李城路 : 학인(學仁))가 발행한 1935년 2월호부터 1936년 1월호까지 통권 6호로, 사이가 많이 뜬 것은 그만큼 곡절이 많았음을 말해 준다. 그렇게 하여 통권 26호이다. 창간호는 A5판 96면, 값 30전, 발행부수는 1천5백부였는데, 1주일이 되기 전에 매진되어 다시 1천5백부를 더 찍어 총 3천부가 매진되었다고 하니, 독자들의 호응이 대단했던 것이다. 춘원은 그때의 상황을 제2호 〈편집후기〉에서, “창간호를 1,000부를 박을까, 1,500부를 박을까 하고 동인끼리 퍽 주저하다가 힘껏 1,500부를 박았다. 그랬던 것이 발행 후 1주일이 못하여 다 팔리고, 재판을 하지 아니치 못하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조그마한 정성이 아우러진 듯하여 감격을 이기지 못하였다”라고 했다. |
특징
작가 배출
『조선문단』은 '현상모집 추천제'를 통해 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이 잡지의 추천제에 의하여 작가가 된 사람은 최서해·채만식·한병도·박화성·유도순·이은상·임영빈·송순일 등이다.
- 대표 인물과 작품
훗날 문단에 이름을 크게 남긴 이는 최서해, 채만식, 박화성, 임영빈, 한병도, 계용묵, 안수길 등이다.
김동인의 감자, 전영택의 화수분,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최서해의 탈출기, 나도향의 물레방아,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등 한국 신문학 초창기의 문제작들을 게재하는 등 문학사에 끼친 공로가 컸다.
문사들 파고들기
『조선문단』은 ‘문사들의 이모양 저모양-문사들의 동정소개’(1호~5호) ‘국내외 유명 문사들의 초상화 게재’(4호/6호), ‘작가론’시리즈(최남선론-6호/김동인론-9호), ‘문사방문기’시리즈(김기진과 주요한-19호/박영희와 김동환-20호),‘문사들의 얼굴’(16호), ‘처녀작발표 당시의 감상’(6호), ‘제작가의 쓸 때의 기분과 태도’(8호), ‘조선문사의 연애관’ 기획(10호) 등 문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기획들이 실시되었다. 이 기획들의 공통점은 이것들이 ‘문인들 자신에 대한 메타담론’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편집진과 필진에는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염상섭, 최서해, 김기진, 박영희 등 이후에 문학사적으로 가름하는 카프와의 대립이나, 이전시기 동인지 문인들이 대타적으로 설정한 이광수 등 이전 세대의 구분 없이 1910년대 일본 유학생들을 필두로 하는 신문학 세대 전체를 망라하는 문인들이 포함된다.
문인들이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하는 자기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런 사생활을 공개하고 그것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문단, 즉 “문학이라는 차별화된 장” 속에 있다는 감각, 그런 것이 허용되고 소통되는 특별한 장의 주인이라는 감각,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대중들에게 읽힐 것이라는, 대중들이 그것을 궁금해 하리라는 판단이 게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