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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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솔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4일 (수) 16:04 판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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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조 원문_유민정

한국 근대 문인 중 한 명인 나혜석 작가는 1896년 4월,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기정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공직에 있으면서 용인군 군수를 역임했기 때문에 나혜석 작가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나기정은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고 교육 시킨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그러나 나기정에게는 몇 명의 첩이 있었는데, 나혜석 작가가 사춘기일 때 그녀보다 한 살 많은 첩을 들이는 것을 보고 정조 관념과 축첩제도, 가부장적 제도에 수많은 의문을 품게 된다. 나혜석 작가는 1910년 8월 제1회 졸업생 4명 중 한 명으로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9월 1일 진명여학교에 편입학한다.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제3회 졸업생 7명 중 최우등으로 졸업했는데, 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1913년 둘째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서향화를 공부하며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일본 체류 중 오빠 나경석의 친구인 최승구를 만나 연애하게 된다. 그리고 1918년 3월 사립 여자 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2월 8일 2·8 독립 선언에 참석하고, 3·25 이화학당 학생 만세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면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는다. 그때 변호사 김우영이 나혜석의 변론을 맡아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1920년 4월 10일, 자신의 4가지 요구 사항을 수용해준 김우영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일본 외무성이 주는 특별 포상인 해외 위로 여행 대상자가 된 남편 김우영과 함께 세계일주여행에 올랐다. 유럽과 미국 등지의 여행은 나혜석 작가의 사상과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1920년대 후반에는 파리에 체류하여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파리에 외교관으로 주재하고 있던 최린과 염문설이 돌았고, 귀국 후 시집살이와 가난에 시달리다 최린과 불륜을 저질러 김우영과 이혼하였다. 최린을 정조 유린이라는 명목으로 고소하였다가 패소하고, ‘이혼고백서’로 인해 사회로부터 큰 비판을 받아서 마땅한 벌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가족들과도 제대로 된 교류를 하지 못하고 살다가 결국 1948년 12월 10일, 서울의 시립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사망하였다.
나혜석 작가의 작품에는 여성과 사회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들어있다. 그녀는 국내 첫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되는 <경희>에서 주인공은 여자도 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지를 봉건적 여성의 삶의 모순을 통해 보여준다. 이 뿐만 아니라, 글과 그림으로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해주어야 함을 거듭 주장하였다. 조선시대 여성은 삼종지의(三從之義)라고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적 도리에 따라 살았는데,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혼고백서>에서 당시 금기시되어 있던 여성의 성욕을 거론했으며, 자신들은 정조를 지키지 않으면서 여성들에게만 요구하는 남성들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구미유기>에서는 영국의 참정권 운동을 소개하면서 참여한 영국여성운동가의 활약을 알리면서 개화파의 실패 이후 참정권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을 향해,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민주주의와 참정권의 당위성을 말하였다. 또한 <모된 감상기>에서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묘사된 분만 시의 고통을 솔직하게 토로하며 여성의 육체에 대한 언급을 기피하는 금기를 깨뜨렸다.
나혜석 작가는 다른 작가들이 차마 언급하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과 환상을,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차게 비판하였다. 다만 그것을 화려한 문체와 뛰어난 글솜씨로 표현했으므로 마땅히 문학인으로서 존경할만한 인물이다. <경희>가 그 예가 된다. 문화포털에서는 <경희>에서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통해 1910년대 일본 여자 유학생의 갈등과 고뇌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 소재적인 가치도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서, 문제 제기와 갈등 해결의 현실성과 인물 묘사의 생생함에서 1910년대 단편소설 중 가장 우수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말하니 나혜석이 문학에 대한 충분한 재능을 갖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단어

  • 나기정
  • 한학
  • 축첩제도
  • 나경석
  • 최승구
  • 2·8 독립 선언
  • 3·25 이화학당 학생 만세 사건
  • 김우영
  • 일본 외무성
  • 인상주의 화법
  • 염문설
  • 최린
  • 페미니즘 문학
  • 경희
  • 봉건적
  • 삼종지의
  • 이혼고백서
  • 구미유기
  • 개화파
  • 모된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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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l+ 나혜석 저작 작품 ! 제목 ll 발표지 ll 시기 ll 유형 l- l「理想的이상적 夫人부인」ll『學之光』학지광 ll 1914. 12 ll 여성비평 「雜感잡감」 『學之光』학지광 1917. 03 여성비평 「雜感잡감-K언니에게 與여(주다)」 『學之光』학지광 1917. 07 여성비평 「夫婦부부」 『女子界』여자계 1호 1917(미발굴) 단편소설 「경희」 『女子界』여자계 2호 1918. 03 단편소설 「光」광 『女子界』여자계 1918. 03 시 「回生회생한 孫女손녀에게」 『女子界』여자계 3호 1918. 09 단편소설 「四年4년前전의日記일기中중에서」 『신여자』 1920. 06 수필 「부인문제의 일단」 『曙光』서광 1920. 07 여성비평(미확인) 「繪畵회화와 朝鮮조선 女子여자-新進신진(새로 나서다) 女流여유의 氣焰기염」 『東亞日報』동이일보 1921. 02. 26 미술에세이 「洋畵양화(바다 그림) 展覽전람(펼쳐 봄)에 對대야」 『每日申報』매일신보 1921. 03. 17 미술에세이 「人形인형의 家가」 『每日申報』매일신보 1921. 04. 03 시 「내물」 『廢墟』폐허 제2호 1921. 04 시 「砂사(모래)」 『廢墟』폐허 제2호 1921. 04 시 「閨怨규원(버림받은 부녀의 원한)」 『新家庭』신가정 1927. 07 단편소설 「婦人부인衣服의복改良개량問題문제-金元周김원주兄형의意見의견에對대하야」 『東亞日報』동이일보 1921. 09. 29 ~ 10. 01 여성비평 「노라」 『노라』(영창서관) 1922. 06 노래가사 「母모된感想記감상기」 『東明』동명 1923. 01. 01. ~ 21 페미니스트 산문 「百結生백결생에게答답함」 『東明』동명 1923. 03. 18 여성비평 「『부인』의 탄생을 축하하여」 『婦人』부인 1923. 04 여성비평(미확인) 康明花강명화의 自殺자살에 對대하야 『東亞日報』동이일보 1923. 07. 08 여성비평 夫妻間부처간의 問答문답 『新女性』신여성 1923. 11 페미니스트 산문 「만주의 녀름」 『新女性』신여성 1924. 07 수필 「一年1생만에 본 京城경성의 雜感잡감(온갖 감성)」 『開闢』개벽 1924. 07 수필 「나를 잇지 안는 幸福행복」 『新女性』신여성 1924. 08 페미니스트 산문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 『朝鮮日報』조선일보 1926. 01. 03 수필 「생활 개량에 대한 녀자의 부르지짐」 『東亞日報』동이일보 1926. 01. 24 ~ 30 페미니스트 산문 「怨恨원한」 『朝鮮文壇』조선문단 1926. 04 단편소설 「美展미전 出品출품 製作제작 中중에」 『朝鮮日報』조선일보 1926. 05. 20 ~ 23 미술에세이 「내 남편은 이러하외다」 『新女性』신여성 1926. 06 수필 「中國중국과 朝鮮조선의 國境국경」 『時代日報』시대일보 1926. 06. 06 시 「京城경성 온 感想감상 一片일편」 『東亞日報』동이일보 1927. 05. 27 수필 「예술가의 생활」 『青年』청년 1927. 06 (미확인) 「아오 秋溪추계에게」 『朝鮮日報』조선일보 1927. 07. 28 구미여행기 「愛兒病看護애아(사랑하는 아이)병간호」 『三千里』삼천리 1930. 01 수필 「佛蘭西불란서(프랑스) 家庭가정은 얼마나 다를가」 『東亞日報』동이일보 1930. 03. 28 ~ 04. 02 구미유기 「歐米구미 시찰긔」 『東亞日報』동이일보 1930. 04. 03 ~ 10 구미여행기 「끽연실」 『三千里』삼천리 1930. 05 수필 「巴里파리에서 본 것 늣긴 것-사람이냐? 학문이냐?」 『大潮』대조 1930. 06, 07 합병호 수필 「名流명유 婦人부인과 産兒制限산아제한」 『三千里』삼천리 1930. 08 설문응답 「젊은 夫婦부부」 『太朝』태조 1930. 09 수필 「나를 잇지안는 幸福행복(帝展入選後感想제전입선후감상)」 『三千里』삼천리 1931. 11 페미니스트 산문 「아아 自由자유의 巴里파리가 그리워-歐米漫遊구미만유하고 온 後후의 나」 『三千里』삼천리 1932. 01 페미니스트 산문 「巴里파리의 모델과 畵家生活화가생활」 『三千里』삼천리 1932. 03 미술에세이 「巴里畵家生活파리화가생활」 『三千里』삼천리 1932. 04 미술에세이 「안데팬당式식이다-설문·混迷低調혼미저조의 朝鮮美術展覽會조선미술전님회를 批判비판함」 『東光』동광 1932. 07 설문응답 「朝鮮美術展覽會조선미술전남회-西洋畵總評서양화총평」 『三千里』삼천리 1932. 07. 01 미술비평 「쏘비엣 露西亞行노서아행」 『三千里』삼천리 1932. 12 구미유기 1 「畵家화가로 어머니로-나의 十年間10년간 生活생활」 『新東亞』신동아 1933. 01 페미니스트 산문 「伯林백림의 그 새벽」 『新家庭』신가정 1933. 01 구미여행기 「CCCP」 『三千里』삼천리 1933. 02 구미유기 2 「모델-女人日記여인일기」 『朝鮮日報』조선일보 1933. 02. 28 수필 「伯林백림과 巴里파리」 『三千里』삼천리 1933. 03 구미유기 3 「원망스런 봄밤」 『新東亞』신동아 1933. 04 수필 「의 巴里行파리행」 『三千里』삼천리 1933. 05 구미유기 4 「美展미전의 印象인상」 『每日申報』매일신보 1933. 05. 16 ~ 21 미술비평 「巴里파리의 어머니날」 『新家庭』신가정 1933. 05 구미여행기 「伯林백림에서 倫敦윤돈(런던)지」 『三千里』삼천리 1933. 09 구미유기 5 「연필로 쓴 편지」 『新東亞』신동아 1933. 10 수필 「西洋서양 藝術예술과 裸體美나체미」 『三千里』삼천리 1933. 12 구미유기 6 『김명애』 미간행 1933. 12 장편소설(원고일실) 「떡 먹은 이야기」 『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 1934. 01. 14 콩트 「밤거리의 祝賀式축하식(歐구)」 『中央』중앙 1934. 02 구미여행기 「多情다정하고 實質的실질적인 佛蘭西불란서(프랑스) 婦人부인-歐米구미 婦人부인의 敎養교양잇는 家庭生活가정생활」 『中央』중앙 1934. 03 구미여행기 「영원히 이저주시오」 『月刊海新』월간해신 1934. 03 수필 「朝鮮조선에 태어난 것을 행복으로 압니다」 『三千里』삼천리 1934. 05 설문응답 「情熱정열의 西班牙行서반아행」 『三千里』삼천리 1934. 05 구미유기 7 「날러간 靑鳥청조(파랑새)-연애와 결혼문제」 『中央』중앙 1934. 05 수필 「女人여인 獨居記독거기(혼자 사는 기록)」 『三千里』삼천리 1934. 07 수필 「巴里파리에서 紐育뉴욕으로」 『三千里』삼천리 1934. 07 구미유기 8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三千里』삼천리 1934. 07 설문응답 「哀話애화 叢石亭海邊총석정해변」 『月刊每申』월간매신 1934. 08 수필 「離婚이혼 告白狀고백상-靑邱氏청구씨에게」 『三千里』삼천리 1934. 08 ~ 09 페미니스트 산문 「太平洋태평양 건너서(故國고국으로)」 『三千里』삼천리 1934. 09 구미유기 9 「伊太利이태리 美術館미술관」 『三千里』삼천리 1934. 11 구미여행기 「伊太利이태리 美術紀行미술기행」 『三千里』삼천리 1935. 02 구미여행기 「新生活신생활에 들면서」 『三千里』삼천리 1935. 02 페미니스트 산문 「앗겨 무엇하리, 靑春청춘을」 『三千里』삼천리 1935. 03 시 「羅女史나여사의 書翰서한」 『三千里』삼천리 1935. 03 미술관계편지 「歐米구미(유럽+미국) 女性여성을 보고 半島반도 女性여성에게」 『三千里』삼천리 1935. 06 여성비평 「異性間이성간의 友靑論우청론-아름다운 男妹남매의 記기」 『三千里』삼천리 1935. 06 수필 「나의 여교원 시대」 『三千里』삼천리 1935. 07 수필 「獨身女性독신여성의 貞操論정조론」 『三千里』삼천리 1935. 10 여성비평 「巴里파리의 그 女子여자」 『三千里』삼천리 1935. 11 희곡 「英米영미 婦人부인 參政權참정권 運動者운동자 會見記회견기」 『三千里』삼천리 1936. 01 여성비평 「倫敦윤돈(런던의 음역어) 救世軍구세군(기독교의 한 파) 託兒所탁아소(아동복지시설)를 尋訪심방하고」 『三千里』삼천리 1936. 04 여성비평 「佛蘭西불란서(프랑스) 家庭가정은 얼마나 다를가」 『三千里』삼천리 1936. 04 구미여행기 「玄淑현숙(겁고 맑은)」 『三千里』삼천리 1936. 12 단편소설 「애정에 우노라······」 『三千里』삼천리 1937. 04 (미발굴) 「나의 東京女子美術學校時代동경여자미술학교시대」 『三千里』삼천리 1937. 05 수필 「靈영(영혼)이냐, 肉육(육체)이냐, 靈肉영육이냐, 靈肉영육이 合합(+)한 戀愛연애라야한다」 『三千里』삼천리 1937. 12 여성비평 「海印寺해인사의 風光풍광」 『三千里』삼천리 1938. 08 수필

대표 작품

경희

모된 감상기

이상적 부인

구미시찰기

이혼고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