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생애와 그에 따른 작품 경향의 변화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부친을 따라 서울로 갔다가 1912년 봉평으로 다시 내려와 서당을 다녔다. 이때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의 창작 단서를 얻었다고 한다. 그가 다니던 서당 근처에 충주집이라는 주막이 있었으며 허씨 집안과 가까이 지내던 일가의 옥분이라는 딸이 허씨와 물방앗간에서 인연을 맺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등 이러한 단서들이 그의 대표작의 모티브임을 보여주고 있다.

1914년 평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0년 졸업 전까지 하숙생활을 하였다. 이 기억은 그의 단편소설 <석류>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2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예과 시절에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던 이효석 작가는 그 당시 창작 활동 중에서 비교적 본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소설 <주리면- 어떤 생활의 단편>을 지필한다. 이 작품은 그의 인간관과 사회관, 취향 등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27년 예과를 수료하고 법과 진학이 아닌 영문학에 진입하였다. 학부 졸업 논문이 희곡작가인 싱에 대해 쓸 정도로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크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이효석은 문우회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고 1929년 단편 <기우>, <행진곡> 및 시나리오 <화륜> 등을 발표한다. 이와 같은 이효석의 초기작은 좌익이념이 드러나며 사회주의 사상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동반자적 경향을 띄고 있다. 1930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노령근해>, <깨뜨려지는 홍등>, <악령기>등의 단편 소설을 쏟아낸다.

1931년 그는 그의 작품을 모아 단편집 <노령근해>를 발간하였고 <프레류드>와 <북국사신>을 발표하며 당시 많은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어려웠다. 결국 그는 은사의 도움을 받아 조선총독부 검열계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가 하게된 일은 일제 식민지 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을 찾아 지적하고 삭제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우리나라의 지식인과 작가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며 문학 평론을 하는 이갑기라는 사람에게 ‘너도 개가 다 됐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게된 후 작품활동의 침체기가 온다.

1932년에는 검열계를 그만두고 경성 농업학교에서 영어교수로 취임한다. 경성 생활은 창착활동 침체 시기였지만 그가 자연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그의 창작 경향에 반환점이 되었다. 이후 2년 정도의 침체기를 지나 1933년 구인회를 결성하고 <>이라는 작품을 낸다. 이 작품은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좌익이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대신 애욕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고 도덕적 퇴폐주의를 포함하는 심미주의로 흐린다. 이는 창작 방향이 완전히 바뀐 작품이었다.

1936년에는 <인간 산문>, <>, <>, <메밀꽃 필 무렵>, <분녀>, <고사리> 등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성’의 문제를 드러낸 작품으로 성은 본질적이고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녹아있다.

1938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숭실 전문학교가 폐교하며 교수직을 사임하게 된다.

1939년 이후 이효석은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며, 나폴레옹의 최후를 표현한 작품인 <황제>를 발표하였다.

1940년 일제의 억압을 받은 이효석은 일본어로 <은은한 빛]>과 같은 작품을 발간하며 친일문학을 썼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민족주의적 성향의 글을 썼기에 친일문학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5월25일 별세하였다. 사망 작전에 <일요일>과 <풀빛>을 발표하였으며 사망 이후에도 작품이 발간되었다.

작품

주요 작

제목 년도 구분 비고
1925 매일신보에서 입선
여인 1925 꽁트 동반작가
빨간 꽃 1927
6월의 아침 1927
님이여 어디로? 님이여 들로? 1927
주리면----어떤 생활의 단편 1927 단편
도시와 유령 1928 단편 조선지광에 발표
기우 1929 단편 조선지광에 발표
행진곡 1929 단편 조선문예에 발표
화륜 1929 시나리오 중외일보에 발표
마작철학 1930 단편
깨뜨려진 홍등 1930 단편
서점에 비친 도시의 일면상 1930 단편
약령기 1930 단편
하얼빈 1930 단편
상륙 1930 단편
추억 1930 단편
북국사신 1930 단편
출범시대 1931 시나리오 동아일보에 발표
노령근해 1931 단편집 대중공론, 동지사에 발표
오리온과 능금 1932 단편 삼천리에 발표
북국점경 1932 단편
가을의 서정 1933 단편 삼천리에 발표, 1941년 박문서관에서 나온 이효석 단편집에는 ‘독백’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1933 단편 조선문학에 발표
수탉 1933 단편
주리야 1933 장편
10월에 피는 능금꽃 1933 단편
일기 1934 단편
수난 1934 단편
계절 1935 단편
성수부 1935 단편
성화 1935 중편 조선일보에 연재
메밀꽃 필 무렵 1936 단편 출간 당시 제목은 '모밀꽃 필 무렵'
1936 단편
1936 단편
고사리 1936 단편
사냥 1936 단편
천사와 산문시 1936 단편
인간산문 1936 단편
석류 1936 단편
분녀 1936 단편 중앙 1~2월호 합본호에 발표
개살구 1937 단편
거리의 목가 1937 중편
성찬 1937 단편
낙엽기 1937 단편
노령근해 1937 단편 재수록
삽화 1937 단편
마음에 남는 풍경 1937 수필
인물 있는 가을 풍경 1937 수필
주을의 지협 1937 수필
장미 병 들다 1938 단편
가을과 산양 1938 단편
1938 단편
겨울이야기 1938 단편
공상구락부 1938 단편
낙엽을 태우면서 1938 수필
부록 1938 단편
해바라기 1938 단편
화분 1939 장편
향수 1939 단편
황제 1939 단편
성화 1939 중편 삼문사에 발간
여수 1939 단편 동아일보에 연재
산정 1939 단편
창공 1940 장편 매일신보에 연재
은은한 빛 1940 단편 일본어로 발표
엉겅퀴의 장 1940 단편 일본어로 발표
벽공무한 1941 장편 박문서관에서 출간
이효석 단편집 1941 단편집 박문서관에서 출간
라오콘의 후예 1941 단편
산협 1941 단편
만포 1943 단편 유고, 춘추에 기재
황제 1943 단편집 박문서관에서 간행
일표의 공능 1943 단편

작품 세계

그 발표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3편의 장편을 비롯하여 60여편의 중편, 80여 편의 단편 등 많은 소설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 외에도 희곡과 시, 또한 수필까지 발표하는 등 문학 전반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작품 세계를 노함에 있어 대략 작품의 경향에 의해 전기와 후기로 나누고 있는 것이 이제까지의 편의상 보편적인 연구 결과이다.

이효석의 작품은 1933년 <돈>을 전후로 하여 나뉘는데 1928년경에서부터 1932년까지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북극사신>, <깨뜨려지는 홍등>, <약령기>, <추억>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은 동반자적 경향을 보이며 대체적으로 식민지하에서의 질곡되고 어두운 사회면이 적나라하게 반영되는데, 예를 들면 농민, 가난한 노동자, 술집 여인 등을 등장시켜 사회 병리현상을 비판하고 고발하며 저항하는 경향주의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들이다.

1933년부터 1942년의 작품 등이 동반작가로부터 탈피하여 변신되는 시기로 후기작품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이 시기의 이효석 작품들은 심미주의 경향을 띄고 있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돈>을 시발점으로 하여 이효석은 인간본능의 순수의 세계를 작품에 노골화시키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이효석의 작품세계의 특질은 향수의 문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지향은 안으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밖으로는 이국, 특히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와 같이 고향의 산천을 무대로 한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들>, <분녀>, <화분>등에서와 같이 인간의 근원적인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관련 장소

기타

네트워크 그래프

참고문헌

이효석문학재단

이효석문학예술촌

작성자 및 기여자

그레이색이야조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