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평전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홍명희 평전

개요

홍명희 소설가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평전으로 홍명희가 가담했던 사회운동과 정치활동에 대한 복잡한 논의는 과감하게 축소하고 개인 사와 인간적 면모에 밀착하여 홍명희 소설가의 삶을 재구성한 책

홍명희평전.jpg 벽초홍명희.jpg

줄거리

1. 명문가에서 태어난 벽초 홍명희

홍명희는 혜경궁 홍씨가 태어난 풍산 홍씨 추만공파의 명문 사대부가 출신이다. 유년시절부터 기억력이 비상했으며 중국 고전을 읽는 등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폭넓은 독서를 계속하여 근대문학신사상에 정통하게 됨으로써 어릴 때 받은 한학 교육과 함께 민족 주체적 입장에서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을 바람직하게 통합한 지식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다.

2. 신 문물과 근대사상과의 만남

일본 다이세이 중학 유학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만조보(萬朝報)』한인수재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후일 홍명희는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조선 삼재’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일본 유학은 홍명희의 민족의식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독립운동의 모색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부친 홍범식이 자결한다. 부친의 순국 이후 한동안 은둔하다시피 지내던 홍명희는 1912년 가을 중국으로 건너가 동제사에 가입해 활동한다. 이 시절 홍명희는 새로운 서양 문물을 접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운동가로서나 문학인으로서 내면적으로 크게 성장한다. 해외에서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홍명희는 만세 시위를 주도한 후 검거되어 1년 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출옥 후에는 주로 교육계와 언론계에 몸을 담으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에 전념한다. 1926년 말 그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협동하여 ‘참다운 민족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신간회운동’을 전개하다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된다.

4. 해방 후의 활동

일제 말 홍명희는 일제의 협박과 회유를 피하기 위해 창작을 포함한 모든 사회활동을 그만두고 은둔에 들어간다. 1945년 드디어 고대하던 해방을 맞은 후 홍명희는 정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투신한다. 하지만 신탁통치 파동 중에 좌, 우익 양측에서 자신의 의사도 묻지 않고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면서 좌, 우익 양측 모두와 분명한 선을 긋고 중간파 정치지도자들과 함께 중간파 정당활동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문맹 타파, 과학사상 보급, 여성의 지위 향상과 같은 정책을 내세운 계몽적 성격이 강한 민주독립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당 결성 이후 중간파 정치세력은 남북한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한 방도로서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의 회합을 구상하고 추진하기에 이르는데,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된다. 그리고 홍명희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측 대표로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북행 길에 오르게 되며 이때 남북연석회의 이후 북에 잔류하게 된다. 북에 남은 홍명희는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부수상에 임명되기도 하는 등 팔순의 나이로 북에서 사망할 때까지 고위직에 남아 있었다. 그는 현재 평양 교외 애국열사릉에 부인 민순영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

5. 진취적인 여성관

홍명희는 그 세대의 남성들 중에서는 예외적일 정도로 진취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운동의 단일전선인 근우회가 창립했을 때 홍명희는 『동아일보』「일인일화(一人一話)」란에서 「근우회에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근우회에 대해 각별한 기대를 표명하는 발언을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완전한 합리적 인류사회에는 여자가 남자와 같이 정치적·문화적으로 활동할 균일한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라고 하여 남녀평등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우리 조선은 현금(現今) 세계 선진국에 비하여 후진이라 모든 것이 남에게 뒤진 중에 여성운동 같은 것은 더욱이 뒤진 것의 하나입니다”라고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출판 정보

  • 출판: 사계절
  • 발매: 2004년 10월 25일

작가 정보

강영주

강영주.jpg

1952년 전남 장성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근대 역사소설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9년부터 3년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유학하여 비교문학, 독문학, 철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인 1982년부터 현재까지 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사논문에서 1920~30년대 역사소설들을 논하면서 홍명희의 『임꺽정』에 대해 최초로 학문적인 논의를 시도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황석영의 『장길산』을 논하여 『한국 역사소설의 재인식』(1991)을 간행했다. 그 후 오랫동안 홍명희 연구에 전념하여 자료집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공편, 1996)와 연구서인 『벽초 홍명희 연구』(1990)를 펴냈다. 근래에는 『임꺽정』을 다각도로 논한 저서를 준비하는 한편 홍명희의 장남인 저명한 학자 홍기문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으며, 「『임꺽정』과 꾸쁘린의 『결투』」, 「국학자 홍기문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네트워크 그래프

그래프홍명희평전.JPG

RDF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홍명희 홍명희평전 A는 B에 언급되다
홍명희평전 평전 A는 B이다
홍명희평전 2004년 A는 B에 출판되었다
홍명희평전 강영주 A는 B에 의해 집필되었다
홍명희평전 홍명희의 삶 A는 B를 보여준다

참고문헌

  • 강영주.(2004).『홍명희 평전. 사계절출판사
  • 서울신문사.(2004)."강영주교수 ‘벽초 홍명희 평전’ 펴내".10월 21일
  • 경향신문.(2004)."벽초는 반항적 리얼리스트".10월 24일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최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