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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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하연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29일 (일) 18: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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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908년 : 서울 출생

1921년 : 보성중학에 입학 (현재 보성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분리됨)

1924년 : 동아일보에‘성아’라는 필명으로 감상적 연애시인 <연주대>,<해녀가>등의 시 투고

1925년 : 집안 파산으로 중퇴

1926년 : 어머니의 사망. 그 충격으로 거리를 전전. 연극에 대한 평론을 집필하며 영화와 연극에 관심을 갖게됨.
매일신보와 조선일보에 시와 수필, 평론을 발표. 12월 카프 가입

1927년 : 다다이즘과 프롤레타리아 사상(계급문학)에 흥미를 느끼며 <지구와 빡테리아>,<>등을 써냄,

1928년 : 윤기정과 가까이 지내면서 박영희를 만나게 됨. 카프 중앙위원으로 활동

1928년 ~ 1930년 : 임화는 연극과 영화에 참여하게 되고 <유랑>과 <혼가>등의 작품에서 주연배우로 활동

1929년 : <우리옵바와 화로>,<네거리의 순이>등을 써내며 대표적인 경향파 시인으로 자리잡음, 카프를 대표하는 작가가 됨

1930년 : 박영희의 도움으로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이북만 중심의 ‘무산자산’그룹에서 활동

1932년 : 일본에서 귀국, 카프 서기장이 되면서 카프 제 2세대 주역이 됨

1934년 : 일본 경찰의 카프 탄압

1935년 : 카프 해산

월북 과정에서 첫 아내인 이귀례와 헤어지고 지하련(본명 이현욱, 작가로 활동, 1912-1953)과 재혼
이후 임화는 <다시 네거리에서>,<바다의 찬가> 등 문학사와 관련된 글 집필

1938년 : 제 1시집 <현해탄>발간, 학예사 경영

1940년 : 평론집 <문학의 논리> 발간
일제말 친일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에 가입(1944년까지 근무)

1945년 :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여 좌익 문인들을 규합

1946년 : 조선문학가동맹 결성 (일명 아서원 좌담회 또는 봉황각 좌담회를 통해 친일 행위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하며 한국 문단사상 최대의 문학단체 결성)

1947년 : 월북. 제 2,3시집 <찬가>,<회상시집>발행

1951년 : 6.25발발이후 남으로 와 조선문화총동맹을 조직.

다시 월북하여 이때의 전선체험을 담은<너 어느 곳에 있느냐>,<바람이여 전하라> 등의 서정시를 남김

1953년 : 김일성을 추종하는 북로당과의 암투와 권력투쟁의 결과로 김일성의 명령 하에 남로당 계열의 숙청 전개로 남로당 중심인물들과 함께 임화는 북한 법정에 서게 되고 여러 문인들과 함께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당하여 사망

활동

대표 시

평론집

연극 및 영화

작품세계

문학사적 가치

키워드(선정단어 20)

이름 선정 단어
강주희 식민주의, 이식문화론, 조선문학가동맹, 조선문화총동맹
사혜영 학예사, 현해탄, 문학의 논리, 조선문인보국회
서동훈 계급문학, 계몽, 다다이즘, 조선신문학사
양하연 윤기정, 탈식민주의, 우리옵바와 화로, 다시 네거리에서
정서린 박영희, 지하련, 찬가, 회상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