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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1896년 4월 18일 '''인천부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 291번지(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45번지)'''에서 호조 참판을 지낸 나영완(羅永完)의 손녀이며, 시흥군 군수를 지낸 나기정(羅基貞)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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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3일 (금) 17:28 판



소개글


나혜석(1896.04.28.~1948.12.10.)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몇 안되는 여성 근대 작가로서 여성 인권에 관한 논설, 조혼과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며 그 당시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을 세상에 알렸다.
대표 작품으로는 「경희」, 「모된 감상기」, 「구미시찰기」, 「이혼고백서」 등이 있다.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 문학을 쓴 작가로 현 시대에서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생애

부모님과 형제

나혜석은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나혜석은 아버지 나기정과 어머니 최시의 사이의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형제는 아버지가 첩을 두면서 이복 언니도 존재했다.
나혜석의 아버지 나기정은 양반으로 한일합방 전후 군수를 지낸 개관 명료로 용인 군수를 역임하며 부유한 가정을 만들었다. 또한 자녀들에게 차별 없이 신교육을 받게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혜석은 다양한 경험을 하였고 사회, 여성 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나기정은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될 수 있는 행동을 많이 했지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기정은 딸들이 태어난 후에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아명으로 딸들을 불렀다. 더하여 나기정은 본처인 나혜석의 어머니 최시의를 두고 여러 명의 첩을 두었다. 많은 첩 중에는 기생 출신으로 나혜석과 또래인 어린 첩도 존재했다. 또한, 이 어린 첩은 나기정의 총애를 받아 본처인 최시의에게 많은 박해를 가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나혜석은 당시 첩을 두는 사회에 반감을 느끼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

나혜석은 어린 시절을 이름 없이 보냈다. 그녀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명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후 ‘나혜석’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이름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혜석은 1910년 삼일여학교를 입학하여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그녀는 일본의 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 전공에 입학하여 유학 생활을 하였다. 그년는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오빠 나경석의 소개로 조선인 유학생들이 조직한 학우회에서 최승구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하지만 최승구는 폐렴과 결핵으로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나혜석과 사별하게 되었다.

결혼 및 세계 여행

최승구와 사별한 후 나혜석은 김우영을 만나게 되었고 집안의 결혼 압력으로 인해 김우영의 청혼을 받아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결혼 조건으로 4가지의 조건을 들었다.

조건 조건 내용
조건1 평생 지금처럼 사랑해 줄 것
조건2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 말 것
조건3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하게 해줄 것
조건4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

김우영은 이러한 결혼 조건을 받아들였고 그녀의 결혼은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좋은 부부관계를 이어나갔고 딸 감나열과 아들 김선과 김진을 낳았다. 또한 그녀는 결혼 후 다양한 작품활동과 항일, 독립, 여성 운동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혔다.이렇게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하던 중 남편 김우영일본 외무성이 주는 해외여행 포상자가 되었고 나혜석은 남편과 세계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혜석 부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여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서양을 여행하엿다. 그녀는 세계여행을 통해 자신의 작품 사상과 세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혼

작고


문학 활동


대표 작품

경희

모된 감상기

구미시찰기

이혼고백서


작품세계와 평가

작품 세계

평가

나혜석의 평가는 1990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0년대 이전

나혜석의 삶 초반에는 작가와 화가로서 보인 역량과 지식인층에 속한 집안의 여성으로서의 진취적인 행보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당시 나혜석 평가의 핵심은 당대의 인습에 도전한 ‘신여성’이다. 신여성 이외에도 시대를 앞선 선각자라는 평가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봉건윤리의 희생자, 또는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찼던 한국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평가 등이 있다.

하지만 구미여행 이후 김우영과의 이혼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부정적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말과 작품들로 점차 고립되어 1930년대 이후로는 평가 자체를 받지 못했다. 나혜석을 이르는 말은 혼외정사녀, 이혼녀 등 정조를 지키지 못한 여성으로서의 평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1990년대 이후

1948년 12월 나혜석 사망 이후, 19990년대부터 서구의 페미니즘 이론이 수입되기 시작한다. 여성의 인권과 양성평등이 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선구자 였던 나혜석에 대한 본격적인 학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95년 나혜석기념사업회와 나혜석학회가 설립되었다. 나혜석의 문학, 여성학과 미술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나혜석에 관한 객관적 사실로서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 최초의 여성 여류화가, 최초로 구미여행을 다녀온 여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나혜석을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삶으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된 인물이라는 시각과, 정조취미론과 혼외정사등이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혜석의 행보를 개인적인 일탈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 공존한다. 나혜석의 미술활동에 대해서는 그가 페미니스트 화가였다는 것을 긍정하는 입장과 부정하는 입장이 대립하였으나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데, 이는 그의 미술 작품 목록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혜석에 관한 객관적 사실로서는 당시 식민지 사회에서 신여성은 소수였고 고립돼 있었다. 이 때문에 나혜석이나 윤심덕 등 대부분의 신여성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그들의 주장은 조롱 속에 무시됐다.

나혜석의 여성 운동이 급진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1920년대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 등의 신여성운동이 실패를 하게 된 동기를 단지 그들이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다. 여성사 학자들은 한국적 상황과 그들이 일본을 통해 간접 수입한 북유럽의 여성운동의 경제·사회적 배경에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활동 작품

그림 목록

작품 제목 작품 출간 시기 작품 유형 작품 참고 사항
<농가> 1922 선적도록 유채 제1회 입선
<春춘(봄)이 오다> 1922 선적도록 유채 제1회 입선
<滿洲만주 봉천 풍경> 캔버스에 유채 27*39 개인소장
<농촌 風景풍경> 1923 합판에 유채 23.5*32.5 개인소장
<봉황산> 1923 선적도록 유채 제2회 입선
<봉황성의 남문> 1923 선적도록 유채 제2회 4등 입상 개인 소장
<秋추(가을)의 庭정(뜰)> 1924 선적도록 유채 제3회 4등 입상
<初夏초하(초여름)의 오전> 1924 선적도록 유채 제3회 입선
<娘娘廟낭랑묘> 1925 선적도록 유채 제4회 3등 입상
<天后宮천후궁> 1926 선적도록 유채 제5회 특선
<支那町지나정> 1926 선적도록 유채 제5회 입선
<봄의 오후> 1927 선적도록 유채 제6회 무감사 입선
<金雨英김우영 초상> 1927 유채 개인소장
<裸婦나부(벌거벗은 아내) 습작> 1927 유화
<舞姬무희> 1927~1928 캔버스에 유채 39*33.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파리 風景풍경> 1927~1928 목판에 유채 23*33 개인소장
<스페인 國境국경> 1928 목판에 유채 23.5*33 개인소장
<불란서(프랑스) 마을 풍경> 1928 유채 30*5.5 개인소장
<스페인 해수욕장> 1928 캔버스에 유채 32.5*43 개인소장
<仁川인천風景풍경> 합판에 유채 15*22 개인소장
<自畵像자화상> 1928 캔버스에 유채 65*50 개인소장
<녹동 풍경> 1929~1930 유채 개인소장
<어린이들> 1930 선적도록 유채 제9회 입선
<畵家村화가촌> 1930 선적도록 유채 제9회 입선
<裸婦나부> 1931 선적도록 유채 제10회 입선
<庭園정원> 1931 선적도록 유채 제10회 특선, 제12회 제전 입선
<芍藥작약> 1931 선적도록 유채 제10회 입선
<소녀> 1932 선적도록 유채 제11회 무감사 입선
<창가에서> 1932 선적도록 유채 제11회 무감사 입선
<金剛山금강산萬相亭만상정> 1932 선적도록 유채 제11회 무감사 입선
<善竹橋선죽교> 1933 목판에 유채 23*33 개인소장
<다솔사> 합판에 유채 54*69 개인소장
<화령전 작약> 1934 목판에 유채 34*23 리움삼성미술관
<水原수원 西湖서호(서쪽 호수)> 1934 목판에 유채 30*39 개인소장
<별장> 1935 목판에 유채 22.5*33 개인소장
<海印寺해인사 石塔석탑> 1938 즈음 합판에 유채 32*33 개인소장
<불란서 교외 풍경> 캔버스에 유채 8호 개인소장
<早朝조조> 1920. 01 판화 『공제』
<개척자> 1921. 07 판화 『開闢』개벽 13호
<저것이 무엇인고> 1920. 04 만화 『신여자』
<김일엽 선생의 가정생활> 1920. 06 만화 『신여자』
<廉想涉염상섭(1897~1963) 작품집> 1924 표지화 『견우화』
<섣달대목> 1919. 01. 21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섣달대목> 1919. 01 30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섣달대목> 1919. 02 01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초하룻날> 1919. 02. 02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초하룻날> 1919. 02. 03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초하룻날> 1919. 02. 04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초하룻날> 1919. 02. 06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초하룻날> 1919. 02. 07 만필 『每日申報』매일신보
<경성역에서>, <전동식당에서> 1932(?) 만필
<계명구락부에서> 만필
<총석정 어촌에서> 1932 만필
<인형의 家가> 1921. 03. 02 ~ 05 삽화 『每日申報』매일신보
<이상을 지시하는 계명자> 1932. 12 삽화 『계명』


저작 목록

작품 제목 작품 발표지 작품 출간시기 작품 유형
「理想的이상적 夫人부인」 『學之光』학지광 1914. 12 여성비평
「雜感잡감」 『學之光』학지광 1917. 03 여성비평
「雜感잡감-K언니에게 與여(주다)」 『學之光』학지광 1917. 07 여성비평
「夫婦부부」 『女子界』여자계 1호 1917(미발굴) 단편소설
「경희」 『女子界』여자계 2호 1918. 03 단편소설
「光」광 『女子界』여자계 1918. 03
「回生회생한 孫女손녀에게」 『女子界』여자계 3호 1918. 09 단편소설
「四年4년前전의日記일기中중에서」 『신여자』 1920. 06 수필
「부인문제의 일단」 『曙光』서광 1920. 07 여성비평(미확인)
「繪畵회화와 朝鮮조선 女子여자-新進신진(새로 나서다) 女流여유의 氣焰기염」 『東亞日報』동이일보 1921. 02. 26 미술에세이
「洋畵양화(바다 그림) 展覽전람(펼쳐 봄)에 對대야」 『每日申報』매일신보 1921. 03. 17 미술에세이
「人形인형의 家가」 『每日申報』매일신보 1921. 04. 03
「내물」 『廢墟』폐허 제2호 1921. 04
「砂사(모래)」 『廢墟』폐허 제2호 1921. 04
「閨怨규원(버림받은 부녀의 원한)」 『新家庭』신가정 1927. 07 단편소설
「婦人부인衣服의복改良개량問題문제-金元周김원주兄형의意見의견에對대하야」 『東亞日報』동이일보 1921. 09. 29 ~ 10. 01 여성비평
「노라」 『노라』(영창서관) 1922. 06 노래가사
「母모된感想記감상기」 『東明』동명 1923. 01. 01. ~ 21 페미니스트 산문
「百結生백결생에게答답함」 『東明』동명 1923. 03. 18 여성비평
「『부인』의 탄생을 축하하여」 『婦人』부인 1923. 04 여성비평(미확인)
康明花강명화의 自殺자살에 對대하야 『東亞日報』동이일보 1923. 07. 08 여성비평
夫妻間부처간의 問答문답 『新女性』신여성 1923. 11 페미니스트 산문
「만주의 녀름」 『新女性』신여성 1924. 07 수필
「一年1생만에 본 京城경성의 雜感잡감(온갖 감성)」 『開闢』개벽 1924. 07 수필
「나를 잇지 안는 幸福행복」 『新女性』신여성 1924. 08 페미니스트 산문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 『朝鮮日報』조선일보 1926. 01. 03 수필
「생활 개량에 대한 녀자의 부르지짐」 『東亞日報』동이일보 1926. 01. 24 ~ 30 페미니스트 산문
「怨恨원한」 『朝鮮文壇』조선문단 1926. 04 단편소설
「美展미전 出品출품 製作제작 中중에」 『朝鮮日報』조선일보 1926. 05. 20 ~ 23 미술에세이
「내 남편은 이러하외다」 『新女性』신여성 1926. 06 수필
「中國중국과 朝鮮조선의 國境국경」 『時代日報』시대일보 1926. 06. 06
「京城경성 온 感想감상 一片일편」 『東亞日報』동이일보 1927. 05. 27 수필
「예술가의 생활」 『青年』청년 1927. 06 (미확인)
「아오 秋溪추계에게」 『朝鮮日報』조선일보 1927. 07. 28 구미여행기
「愛兒病看護애아(사랑하는 아이)병간호」 『三千里』삼천리 1930. 01 수필
「佛蘭西불란서(프랑스) 家庭가정은 얼마나 다를가」 『東亞日報』동이일보 1930. 03. 28 ~ 04. 02 구미유기
「歐米구미 시찰긔」 『東亞日報』동이일보 1930. 04. 03 ~ 10 구미여행기
「끽연실」 『三千里』삼천리 1930. 05 수필
「巴里파리에서 본 것 늣긴 것-사람이냐? 학문이냐?」 『大潮』대조 1930. 06, 07 합병호 수필
「名流명유 婦人부인과 産兒制限산아제한」 『三千里』삼천리 1930. 08 설문응답
「젊은 夫婦부부」 『太朝』태조 1930. 09 수필
「나를 잇지안는 幸福행복(帝展入選後感想제전입선후감상)」 『三千里』삼천리 1931. 11 페미니스트 산문
「아아 自由자유의 巴里파리가 그리워-歐米漫遊구미만유하고 온 後후의 나」 『三千里』삼천리 1932. 01 페미니스트 산문
「巴里파리의 모델과 畵家生活화가생활」 『三千里』삼천리 1932. 03 미술에세이
「巴里畵家生活파리화가생활」 『三千里』삼천리 1932. 04 미술에세이
「안데팬당式식이다-설문·混迷低調혼미저조의 朝鮮美術展覽會조선미술전님회를 批判비판함」 『東光』동광 1932. 07 설문응답
「朝鮮美術展覽會조선미술전남회-西洋畵總評서양화총평」 『三千里』삼천리 1932. 07. 01 미술비평
「쏘비엣 露西亞行노서아행」 『三千里』삼천리 1932. 12 구미유기 1
「畵家화가로 어머니로-나의 十年間10년간 生活생활」 『新東亞』신동아 1933. 01 페미니스트 산문
「伯林백림의 그 새벽」 『新家庭』신가정 1933. 01 구미여행기
「CCCP」 『三千里』삼천리 1933. 02 구미유기 2
「모델-女人日記여인일기」 『朝鮮日報』조선일보 1933. 02. 28 수필
「伯林백림과 巴里파리」 『三千里』삼천리 1933. 03 구미유기 3
「원망스런 봄밤」 『新東亞』신동아 1933. 04 수필
「의 巴里行파리행」 『三千里』삼천리 1933. 05 구미유기 4
「美展미전의 印象인상」 『每日申報』매일신보 1933. 05. 16 ~ 21 미술비평
「巴里파리의 어머니날」 『新家庭』신가정 1933. 05 구미여행기
「伯林백림에서 倫敦윤돈(런던)지」 『三千里』삼천리 1933. 09 구미유기 5
「연필로 쓴 편지」 『新東亞』신동아 1933. 10 수필
「西洋서양 藝術예술과 裸體美나체미」 『三千里』삼천리 1933. 12 구미유기 6
『김명애』 미간행 1933. 12 장편소설(원고일실)
「떡 먹은 이야기」 『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 1934. 01. 14 콩트
「밤거리의 祝賀式축하식(歐구)」 『中央』중앙 1934. 02 구미여행기
「多情다정하고 實質的실질적인 佛蘭西불란서(프랑스) 婦人부인-歐米구미 婦人부인의 敎養교양잇는 家庭生活가정생활」 『中央』중앙 1934. 03 구미여행기
「영원히 이저주시오」 『月刊海新』월간해신 1934. 03 수필
「朝鮮조선에 태어난 것을 행복으로 압니다」 『三千里』삼천리 1934. 05 설문응답
「情熱정열의 西班牙行서반아행」 『三千里』삼천리 1934. 05 구미유기 7
「날러간 靑鳥청조(파랑새)-연애와 결혼문제」 『中央』중앙 1934. 05 수필
「女人여인 獨居記독거기(혼자 사는 기록)」 『三千里』삼천리 1934. 07 수필
「巴里파리에서 紐育뉴욕으로」 『三千里』삼천리 1934. 07 구미유기 8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三千里』삼천리 1934. 07 설문응답
「哀話애화 叢石亭海邊총석정해변」 『月刊每申』월간매신 1934. 08 수필
「離婚이혼 告白狀고백상-靑邱氏청구씨에게」 『三千里』삼천리 1934. 08 ~ 09 페미니스트 산문
「太平洋태평양 건너서(故國고국으로)」 『三千里』삼천리 1934. 09 구미유기 9
「伊太利이태리 美術館미술관」 『三千里』삼천리 1934. 11 구미여행기
「伊太利이태리 美術紀行미술기행」 『三千里』삼천리 1935. 02 구미여행기
「新生活신생활에 들면서」 『三千里』삼천리 1935. 02 페미니스트 산문
「앗겨 무엇하리, 靑春청춘을」 『三千里』삼천리 1935. 03
「羅女史나여사의 書翰서한」 『三千里』삼천리 1935. 03 미술관계편지
「歐米구미(유럽+미국) 女性여성을 보고 半島반도 女性여성에게」 『三千里』삼천리 1935. 06 여성비평
「異性間이성간의 友靑論우청론-아름다운 男妹남매의 記기」 『三千里』삼천리 1935. 06 수필
「나의 여교원 시대」 『三千里』삼천리 1935. 07 수필
「獨身女性독신여성의 貞操論정조론」 『三千里』삼천리 1935. 10 여성비평
「巴里파리의 그 女子여자」 『三千里』삼천리 1935. 11 희곡
「英米영미 婦人부인 參政權참정권 運動者운동자 會見記회견기」 『三千里』삼천리 1936. 01 여성비평
「倫敦윤돈(런던의 음역어) 救世軍구세군(기독교의 한 파) 託兒所탁아소(아동복지시설)를 尋訪심방하고」 『三千里』삼천리 1936. 04 여성비평
「佛蘭西불란서(프랑스) 家庭가정은 얼마나 다를가」 『三千里』삼천리 1936. 04 구미여행기
「玄淑현숙(겁고 맑은)」 『三千里』삼천리 1936. 12 단편소설
「애정에 우노라······」 『三千里』삼천리 1937. 04 (미발굴)
「나의 東京女子美術學校時代동경여자미술학교시대」 『三千里』삼천리 1937. 05 수필
「靈영(영혼)이냐, 肉육(육체)이냐, 靈肉영육이냐, 靈肉영육이 合합(+)한 戀愛연애라야한다」 『三千里』삼천리 1937. 12 여성비평
「海印寺해인사의 風光풍광」 『三千里』삼천리 1938. 08 수필


관련 항목


관련 장소

출생지와 교육을 받은 지역

  1. 출생지

나혜석 생가터.jpg 나혜석은 1896년 4월 18일 인천부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 291번지(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45번지)에서 호조 참판을 지낸 나영완(羅永完)의 손녀이며, 시흥군 군수를 지낸 나기정(羅基貞)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관련 미디어

생애관련 미디어

꼬꼬무 11회 요약 "정조는 취미일 뿐" 경성을 뒤집어 놓은 세기의 스캔들,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모던걸 나혜석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방송)

公공연한 시리즈 나혜석 그는 누구인가?ㅣ2화(세종문화회관 공공연한시리즈)

작품관련 미디어

영상한국사 I 106 신여성 나혜석, 잡지에 「이혼고백서」를 게재하다(KBS역사저널 그날)

이혼고백서 오디오북

경희 오디오북

모된감상기 오디오북

관련 기타 사항


RDF 출처
주어 목적어 관계 비고
나혜석 경희 집필했다 비고
나혜석 모된감상기 집필했다 비고
나혜석 이혼고백서 집필했다 비고
나혜석 모된감상기 집필했다 비고
나혜석 구미유기 집필했다 비고
나혜석 인상주의 화법 구사했다 비고
나혜석 김우영 이혼했다 비고
나혜석 최승구 사별했다 비고
나혜석 나경석 남매이다 비고
나혜석 최린 외도했다 비고
나혜석 봉건제 비판했다 비고
나혜석 신여성 평가되다 비고
나혜석 2.8독립선언 참여했다 비고
나혜석 정조 유린 위자료 소송 사건 청구했다 비고
나기정 나혜석 낳았다 비고
나혜석거리 나혜석 기린다 비고
김우영 일본 외무성 소속되다 비고
경희 삼종지의 비판했다 비고
여자계 경희 발표했다 비고
경희 페미니즘 문학 소속되다 비고
모된감상기 페미니즘 문학 소속되다 비고
구미유기 페미니즘 문학 소속되다 비고
이혼고백서 페미니즘 문학 소속되다 비고

나혜석 관련 용어

조원 별 선정 용어
김지수 인물
나기정
작품
이혼고백서
단체
일본 외무성
개념
삼종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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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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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석
작품
모된감상기
단체
여자계
개념
축첩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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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장소
나혜석거리
사건
2.8 독립 선언
개념
신여성
홍성수 인물
김우영
작품
경희
개념
인상주의 화법
개념
페미니즘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