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8번째 줄: 8번째 줄:
 
  …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연유로 극작가 문서에는  
+
위의 연유로 극작가 문서에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로 취급하여 서술한다.
  
==국내 주요 극작가==
+
==국내 극작가==
 +
*이름 옆의 *은 현재 고인이 되신 분들을 뜻함.
  
 +
 +
*[[이강백]] - 대표 작품으로 「[[파수꾼]]」과「[[결혼]]」등이 있다.
 +
 +
 +
*[[윤대성]] - 대표 작품으로 「[[노비문서]]」와「[[방황하는 별들]]」등이 있다. 그 유명한「[[수사반장]]」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
 +
 +
*[[이윤택]] - '문화 게릴라'라고 불릴 만큼 '''[[미투|유명했으나...]]'''
 +
 +
 +
*[[윤조병]]* - [[유치진]], [[차범석]]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계승자로 평가받아왔으며, 대표작품으로는「[[농토]]」가 있다.
 +
 +
 +
*[[김광림]] - 현재 한국예술대학교의 연극원 원장으로 있으며, 대표작으로는「[[아침에는 늘 혼자예요]]」가 있다.
 +
 +
 +
*[[이만희]] - 현재 대학로와 충무로를 오가며 스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희곡에서는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인천상륙작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
 +
 +
*[[오태석]] -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는데 한국적 연극의 창조가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템페스트]]」참조.
 +
 +
 +
*[[노경식]] - 역사적 인물과 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작으로「[[정읍사]]」가 있다.
 +
 +
 +
*[[오영진]]* - 민족주의적이고 반일·반공주의적인 작품을 써낸 것이 유명하다. 대표작으로「[[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가 있다.
 +
 +
 +
*[[이근삼]]* - 한국전쟁과 4.19 혁명까지 겪으면서 당대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가 있다.
 +
 +
 +
*[[차범석]]* - 제작극회를 만든 인물 중 하나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발전시킨 것에 큰 공헌을 했다. 대표작은「[[산불]]」이 있다.
 +
 +
 +
*[[김상열]]* -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긴 작품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있다.
 +
 +
 +
*[[유치진]]* - [[노경식]], [[윤대성]] 등이 다닌 [[드라마센터]]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 이후에도 [[한국극작가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는 등 [[극작가]]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작으로는「[[토막]]」,「[[한강은 흐른다]]」등이 있다.
 +
 +
 +
*[[황철]]* - 광복 후 [[낙랑극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연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친일행위와 복잡한 여자 관계는 후에 그의 평가를 깎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있다.
 +
 +
 +
*[[함세덕]]
 +
 +
 +
*[[박조열]]
 +
 +
 +
*[[오재호]]
 +
 +
 +
*[[오혜령]]
  
 
==관련 기관==
 
==관련 기관==
  
 
*[[한국극작가협회]]
 
*[[한국극작가협회]]
 +
*[[드라마센터]]
  
 
==참고 문헌==
 
==참고 문헌==
 
윤대성,『[[극작과 실제]]』, 예니, 1999.02.13.
 
윤대성,『[[극작과 실제]]』, 예니, 1999.02.13.

2018년 6월 19일 (화) 19:27 판

개요

연극, 영화, 뮤지컬, 드라마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사람.


상세

사실상 연극의 대본은 희곡, 영화의 대본은 시나리오, 드라마의 대본은 각본이라고 칭하는 등 정식 명칭이 따로 있으며, 한국극작가협회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라고 칭한다. 각본가나 시나리오 작가와 가장 큰 차이점은 극작가가 연극의 연출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의 각본가는 희곡 작가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취급을 받는다. 윤대성의 극작의 실제에서 희곡과 각본 두 장르를 다 써본 윤대성은 이렇게 말한다.

…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연유로 극작가 문서에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로 취급하여 서술한다.

국내 극작가

  • 이름 옆의 *은 현재 고인이 되신 분들을 뜻함.








  • 오태석 -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는데 한국적 연극의 창조가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템페스트」참조.


  • 노경식 - 역사적 인물과 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작으로「정읍사」가 있다.



  • 이근삼* - 한국전쟁과 4.19 혁명까지 겪으면서 당대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가 있다.


  • 차범석* - 제작극회를 만든 인물 중 하나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발전시킨 것에 큰 공헌을 했다. 대표작은「산불」이 있다.




  • 황철* - 광복 후 낙랑극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연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친일행위와 복잡한 여자 관계는 후에 그의 평가를 깎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있다.





관련 기관

참고 문헌

윤대성,『극작과 실제』, 예니, 199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