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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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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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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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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영화, 뮤지컬, 드라마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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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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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연극의 대본은 희곡, 영화의 대본은 시나리오, 드라마의 대본은 각본이라고 칭하는 등 정식 명칭이 따로 있으며, [[한국극작가협회]]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라고 칭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각본가나 시나리오 작가와 가장 큰 차이점은 극작가가 연극의 연출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의 각본가는 희곡 작가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취급을 받는다. 윤대성은 자신의 저서 [[극작의 실제]]에서 각본을 썼을 때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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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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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단편적인 예시지만 희곡작가와 각본가의 취급이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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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극본, 각본, 희곡을 다 집필하는 작가도 많고, 위에 언급한 것들이 모든 차이점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극작가 문서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로 취급하여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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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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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옆의 *은 현재 고인이 되신 분들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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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 대표 작품으로 「[[파수꾼]]」과「[[결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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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성]] - 대표 작품으로 「[[노비문서]]」와「[[방황하는 별들]]」등이 있다. 한창 유명했던「[[수사반장]]」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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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 '문화 게릴라'라고 불릴 만큼 '''[[미투|유명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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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병]]* - [[유치진]], [[차범석]]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계승자로 평가받아왔으며, 대표작품으로는「[[농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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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림]] - 현재 한국예술대학교의 연극원 원장으로 있으며, 대표작으로는「[[아침에는 늘 혼자예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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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 현재 대학로와 충무로를 오가며 스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희곡에서는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인천상륙작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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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는데 한국적 연극의 창조가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템페스트]]」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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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 - 역사적 인물과 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작으로「[[정읍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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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 - 민족주의적이고 반일·반공주의적인 작품을 써낸 것이 유명하다. 대표작으로「[[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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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삼]]* - 한국전쟁과 4.19 혁명까지 겪으면서 당대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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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 제작극회를 만든 인물 중 하나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발전시킨 것에 큰 공헌을 했다. 대표작은「[[산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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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 -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긴 작품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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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 - [[노경식]], [[윤대성]] 등이 다닌 [[드라마센터]]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 이후에도 [[한국극작가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는 등 [[극작가]]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작으로는「[[토막]]」,「[[한강은 흐른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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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 - 광복 후 [[낙랑극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연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친일행위와 복잡한 여자 관계는 후에 그의 평가를 깎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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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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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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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호]]
  
==정의==
 
연극을 상연하기 위한 대본을 쓰며, 연극 주제에 적합한 문학작품을 새롭게 창작하거나 기존의 문학작품을 선정하여 연극의 형식에 맞게 각색하며, 소설과 영화, 영화 등의 작품들 각색하는 사람을 뜻한다.
 
  
==자유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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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령]]
  
해당 용어의 뜻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목차를 자유롭게 구성하고, 관련 내용을 기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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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 현재 [[한국극작가협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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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관==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한국극작가협회]]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드라마센터]]
|-
 
| [[오태석]] || [[극작가]] || 오태석은 극작가이다 ||
 
|-
 
||[[주어(S)]] || [[목적어(O)]] || A는 B를 ~하다(P) ||
 
|-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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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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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성,『[[극작과 실제]]』, 예니, 1999.02.13.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및 기여자==
[[수도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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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호연]]
[[분류:극작가]] [[분류:이상민]] [[분류:기여자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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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개념/용어정보]] [[분류:유호연]] [[분류:기여자이름]]

2018년 6월 20일 (수) 16:38 기준 최신판

정의

연극, 영화, 뮤지컬, 드라마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사람을 뜻한다.

상세

사실상 연극의 대본은 희곡, 영화의 대본은 시나리오, 드라마의 대본은 각본이라고 칭하는 등 정식 명칭이 따로 있으며, 한국극작가협회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라고 칭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각본가나 시나리오 작가와 가장 큰 차이점은 극작가가 연극의 연출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의 각본가는 희곡 작가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취급을 받는다. 윤대성은 자신의 저서 극작의 실제에서 각본을 썼을 때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했다.

…원고를 방송국에 보낸 후 자존심 상하는 PD의 전화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 자도 못 고치겠소" 한다면 그 작가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연출가도 그 작가와 작업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단편적인 예시지만 희곡작가와 각본가의 취급이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극본, 각본, 희곡을 다 집필하는 작가도 많고, 위에 언급한 것들이 모든 차이점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극작가 문서에서는 희곡 작가만을 극작가로 취급하여 서술한다.

국내 극작가

이름 옆의 *은 현재 고인이 되신 분들을 뜻함.








  • 오태석 -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는데 한국적 연극의 창조가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템페스트」참조.


  • 노경식 - 역사적 인물과 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작으로「정읍사」가 있다.



  • 이근삼* - 한국전쟁과 4.19 혁명까지 겪으면서 당대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가 있다.


  • 차범석* - 제작극회를 만든 인물 중 하나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발전시킨 것에 큰 공헌을 했다. 대표작은「산불」이 있다.




  • 황철* - 광복 후 낙랑극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연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친일행위와 복잡한 여자 관계는 후에 그의 평가를 깎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있다.






관련 기관

참고 문헌

윤대성,『극작과 실제』, 예니, 1999.02.13.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유호연